공부 16편 연재: 주체적 공부라는 것의 의미 : 클리앙

글의 경고문

1. 저의 공부실력 수준은 미천하나 제가 고통을 겪으며 미약하게나마 깨달은 것들을 명시화하고 필요한 이들과 나누기 위한 글입니다. 

즉 공부 입문자 왕초보가 왕초보 다음 단계인 "초보"로 입문 하기 위해 겪었던 것을 저와 비슷하게 심적/상황적 어려움을 겪는 입문자들에게 쓰는 글이니 공부의 중/고수분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을 겁니다. 

2. 다수를 위한 글이 아닙니다. 즉 타이틀 등에서 소수를 위한 글이라는 말에 흥분 상태로 와서 논쟁하시려고 하시는 분은 많은 것을 알지만 그런 분들과 논쟁을 하는 의도로 쓴 것은 아니며 여기서 소수는 엘리트 의식과 폐쇄주의를 지향하는 의식에서 쓴 것이 아닙니다.

즉 그런 흥분 논쟁의 감정 상태로 글을 클릭하신 분들은 안심하고 뒤로 가기를 눌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3. 글의 가독성& 정리 상태는 좋지 않습니다. 저자인 제가 시간 날때 빠르게 - 거의 대부분 폰으로 쓰며,공부편연재주체적공부라는것의의미클리앙 글의 목적도 상업 용도나 인기등 타인의 관심을 얻기 위한 글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삶에 비춰보아 맞는 말이 있는지 독자인 내가 나아가기 위해 이런 글에서 취할 것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저자의 의도에 집중하시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본문


#주체적 공부라는 것의 의미



공부라는 말을 떠올리면 뭐가 떠오를까요?

사실

독자 각자의 어린 시절을 비춰보면 아주 자명하죠..


숨막히고 달달 외워야 하는 고통스럽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행위가 떠오릅니다.


결론부터 말하죠. 

이 공부라고 할때 위처럼 떠오른 이미지는 

바로 남이 강요한 공부를

 내가 억지로 할때 겪는 증상입니다. 


근데 그게 우리가 그런 조건으로

 공부라는 대상을 경험하기 시작했다고, 

그리고 그 상태에서 공부라는 것을

 경험하며 끝나고 방치했다고 해도 

그게 공부 그 자체는 아닙니다. 


마치 스쿼트를 잘못된 자세로 해서

 이상한 곳이 아픈 것을

가지고 일반화 해서 

"스쿼트는 하면 어디가 아픈게 스쿼트야"

 라고 자랑스레 말하면 틀린 것이듯 말이죠.


혹은

마치 양아치 이성만을 만나온 남자나 혹은 여자가

극단적 커뮤니티에서 내가 겪은 바의 이성은

더럽고 우리 성별이 깨달은 존재이노라, 저쪽 이성은

 이러하노라

하고 상대쪽인 이성 집단 전체를 경멸하는 오류가 있죠.

그들에게 우리가 마음을 열어 그 주장을 이해해보면 

어느정도 이해은 되어 불쌍하지만

 그들의 그 주장은

자기의 경험으로 이성 전체를 논하는 오류이고


남을 깎아내리며 비난 여론을 만들어 뭉치려는 것이

너무 티가 나서

어리석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즉 이런 잘못된 공부에 대한 우리의 감정과 이미지는,

 스스로 주체적으로 공부를 할때는

 사라질 정신 현상 & 특성입니다.

 

공부란 행위는 여느 다른 사회에서 성취하는 분야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자립적으로 주체적으로 행위해야 하는 대상입니다. 


하지만 특히 진보적 게시판에서는

학벌과 학벌로 인한 부로 나눠진 결과를

비판해야 하기에


학벌을 욕하다보니 공부라는 것 까지

사회계급 비판의식으로 인해 욕하는 글이

생기고

그를 통해 잘못된 공부의 정의를 

내제화할 가능성도 크게 생깁니다.


즉 공부는 개인의 고유성을 바탕으로 주체적이어야 하는데

사회현상 비판의 시각에서 

사회시스템으로만 공부를 보고 비난하는 

시각이 게시판에 만연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저의 글은 그런 시각을 서두의 경고문에

소수를 위한 글이라고 아예 배제하긴 했더라도

우리의 원초적인 마음에서는 


공부는 주체적행위인 것을 망각하는 

습관들이 옵니다. 


바른 마음과 방향으로 공부한 결과로 사회에 기여하겠다 라고 이미 뜻을 세운 우리라면,

언제나 이를 경계해야 합니다. 


아무리 바른 성취를 과거에 해왔더라도 

인간은 타락하기에 스스로를 계속 갈고 닦고

비판적으로 보며 스스로를 다잡듯이


소수로서 바르게 사회에 기여하는 우리는 

언제나 주체성을 세우고 공부를 해야겠죠.



#주체성의 특성적 측면


그렇다면 주체성은 어떻게 다잡는것일까요?


바로 언제나 

내가 지금 이뤄야 하는 비전의 수준 대상을

정하고


내가 이해할 할수 있게 틀을 탐색하는 것입니다.


즉 공부를 못하는 우리 다수는 당연히

선생님들에게 쳐?맞으며 주입식으로 하는 것이

공부라고 느끼도록 경험을 "당해"왔습니다.

근데 사실 제 글은 공부가 이런 게 다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주체로 서는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공부는 언제나 개인의 고유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언제나 외부 대상으로 내가 이해 안되는 

너무 일반화된 단어로 말해도


언제나 내가 그럼 이걸 어떻게 이해할수 있을까? 

(내가 아주 확실하게 아는 뭐와 비슷하지?)

하고 내면과 경험을 탐색하는 행위를

주체적 인식행위라고 합니다. 


즉 이는 사회에서 여러분에게 해주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도 이렇게 말해주지 않아도

우리 안에서 나 자신의 경험으로

비슷한 대상과 현상을 찾아보고


그 어려운 인식 대상&개념을 치환합니다.


왜 이게 주체적일까요? 남이 그냥 준 것을 

말로만 단어 음이나 단어 획의 모양으로 

외운게 아니고 스스로 내면의 경험을 탐색했기

때문이며,


더 중요하게는 이걸 최종적으로 이해하는 나와

현재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설명하는 내가 중간자 즉 매개 중개자 처럼

적극적으로 이어주는 의식의 수준으로 

현재의식인 '내가' 이 모두를 통합해서

관여하기 때문이죠. 


공부에는 이렇게 내면의 신비한 특성들을 

과학적으로 활용하는 측면이 있기에

결국 불가능해보이던게 이뤄집니다. 


그 중심에는 이렇게 

사회의 강압과 압박 속에서

내면의 힘과 작용을 뚫어보고 행동하는 

주체적 작용이 있고 

우리는 공부라는 주제에서

노예같은 상태가 아닌

(외부의 이 공부대상을 억지로 먹어치워야 하고

우리의 주권은 전혀 없는 노예 같은 상태)가 아닌

 주체로 서게 됩니다. 


다음 글에서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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