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경고문
1. 저의 공부실력 수준은 미천하나 제가 고통을 겪으며 미약하게나마 깨달은 것들을 명시화하고 필요한 이들과 나누기 위한 글입니다
2. 다수를 위한 글이 아닙니다. 즉 타이틀에서 소수를 위한 글이라는 말에 흥분 상태로 와서 논쟁하시려고 하시는 분은 많은 것을 알지만 그런 분들과 논쟁을 하는 의도로 쓴 것은 아니며 여기서 소수는 엘리트 의식과 폐쇄주의를 지향하는 의식에서 쓴 것이 아닙니다.
즉 그런 흥분논쟁상태로 글을 클릭하신 분들은 안심하고 뒤로 가기를 눌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3. 글의 가독성& 정리 상태는 좋지 않습니다. 저자인 제가 시간 날때 빠르게 폰으로 쓰며,공부편ㅡ소수의바른의도자들을위한글클리앙 글의 목적도 상업 용도나 인기등 타인의 관심을 얻기 위한 글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삶에 비춰보아 맞는 말이 있는지 저자의 의도에 집중하시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공부는 마음이다" 라는, 다수의 개인들이 게시판에서 싫어함이 상당히 증명된 주제를 써보겠습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왜 제가 위에 다수의 개인들이 게시판에서 싫어함이 증명된 주제라고 할까요?
진보나 민주 성향이 다수인 커뮤니티&게시판에는 어느정도
"우리는 (소수엘리트계층에비해)가난함 =피해자 =다수가 맞아 = 소수 엘리트들이 주범이지 우리끼리 싸우면 안돼"
식의 논리가 게시판 암묵룰로 작용합니다.
제가 이렇게 등식화하면 너무 적나라하게 암묵 논리를 노출한 셈이라 저를 적으로 착각하거나 저 논리를 가지고
저를 공격할 가능성도 많지만 이 글에서 따로 길게 논하지는 않겠습니다.
위의 논리에서는
공부는 엘리트가하는 것이기에
"공부가 마음이다"는
엘리트들을 결과적으로 숭상할 수 있는 논리로 작용한다는 점 때문에 표면의식이 바로 화를 내며 부정하게 되는게
인간 표면의식의 기본 심리 트리거 작용입니다.
잘못하면 우리 진영의 개인들이 저 논리가 성립하면
저쪽 옹호에 쓰일까봐 화를 내서 반박해야 하는
뇌가 바로 트리거 되죠.
하지만 저의 글은
이 논리의 깊은 심리 기제 작용에 대한 논의 목적에서 쓰는 글은 아니니
바로 이제 저의 본론으로 가봅시다.
저렇게 심리가 트리거 되어 욱 하신분은 바로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당신이 만약 욱했다면 그 독자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의도에서 쓴 글이 아니니 걱정마셔도 되고, 글을 더 읽는 것은 스트레스만 가중될 뿐이며,
다른 인생 구간에서 이해되는 날이 올겁니다.
자 이제 경고를 했으니 제가 집중하는 독자들에게만 아래의 글을 드립니다.
욱한 사람들은 다수라고 합니다.
공부가 마음이라는 논리가 사실이라면
"공부는 스킬따위에 불과해! 라고
소수엘리트 쓰레기야 별거 없어. 스킬이나 타고나서 운좋은 놈들 주제에 씩쎅... 까부니 부숴주마" 식의 마음작용에서 비롯된 무의식이 저변에 깔린 자신이 "틀리다"가 되고
"내가 틀렸다"라는 게 진실이 되니
화가 나겠죠.
그렇기에,
그들의 마음에서 위의 "공부는 뭔가 그 이상이다"라는
명제는,
"공부는 단순한 스킬따위야" 라는 자신들의 주장하고자하는 대명제에 기여하거나
옹호하지 않아 보이는
적군의 명제로 보입니다.
반대로 대단한 양 포장한 것에 동조한
주장이므로
반드시 씩씩거려서 부숴 버려야 하는 논리 명제가 됩니다.
평생 이런 마음 작용이 뭔가 오류가 있고 어리석다는 것을 모른채 살아갑니다.
왜 어리석은 작용인가를 더 과학적 합리적 대상화해서 봅시다.
"공부는 (다) 위대한 마음 작용이므로 (다) 신성하고 (다) 좋다" 라는 것과 분별을 못했기에 그렇습니다.
사회에서는 모든 인식을 말로 표현한 것은
이런식으로 헷갈리게 축약된 버전이 돌아다녀 우리의 인식으로 옵니다.
공부는 마음이다 는
모든 공부가 마음이라서 공부 소수 엘리트는 마음이 예쁜 사람이다 라는 뜻이 아니라
당신, 이말을 깨닫는다면,
공부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바르게 인식 작용으로 들어가 대다수가 그냥 스킬에 불과하게 대하더라도
당신은 다르게 하게. 라는 선인의 조언으로 봐야 합니다.
제가 여기서 쓴 기법을 먼저 설하는게 낫겠습니다.
제가 여기서 무슨 알고리즘을 쓴지 바로 아셨다면 당신은 아주 소수일텐데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즉 저 말을 술해할때는,
결과해석 변수를 써서 보지 말고
원인 접근 변수로 쓰라는 겁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다수의 대중은 그 다수가 서로를 이끌기 위해 쓰는 논리가 있으며 많은 경우 집단 의식에서 가장
의식에너지 효율이 좋은 것은 적군을 욕하는 심리에 맞게 재배열된 언어&개념을 써서 군중 자아를 조정하게 마련입니다.
이 말은 집단 의식자들의 의식은;
소수 엘리트들을 공격하는데 집중해야 많은 경우 좋은 일들이 성취될 수 있는 측면이 있기에 (진보는 다수이고 여러 이익집단들이 있으므로 하나의 agenda가 아니면 서로 내가 더 가난하다 가난 배틀 혹은 그 안에서도 갑을이 있기에 싸우게 되므로..)
그.소수에 대한 적의와 투쟁심을 자극하고 적으로 설정해서 욕하는 측면이 많으며
그 소수를 옹호하는 데 쓰일 모든 논리를 재빠르게 반응해서 막아서 우리편 다른 멤버들에게 경계상태를 전달해야 하는 논리 뇌를 최대 가동한 상태의 인식 출력이 이뤄집니다..
그렇기에 대중은 어떤 말도 적 편에 유리하게 될까봐 전전긍긍한 것처럼 촤대 경계모드에서
모든 개념과 언어를 보고 화를 내는 의식이 투영됩니다.
자 다시,
제가 위에 결과변수로 쓰였다는 말을 했죠?
즉 소수 엘리트가 자원 독식한 상태를 옹호할수도 있게 쓰일수 있다 라고 보는 것을
저는 "결과적으로 저 명제를 썼다"고 합니다.
즉 어떤 인식 작용에서 나온 명제를 x라고 치면
이 x가 어디에 써서 합리화하는데 쓰일지는
어떤 이미 결과로 주어진 상태 y를 합리화하는데 쓰일수 있기에 "결과변수"라고 칭했습니다.
이는 군중체가 스스로 견제 작용을 하는 우주와 자연의 작용이며 좋은 작용이 많이 있으나
오늘의 주제 명제에 한해서는 잘못 쓰였다는 말이며
반대로 우리는
어떤 시각도 저렇게 쓰려는 경향을 바로 메타인지로
우리의 저차원 본능 발현을 알아채고
반대로
원인 인풋 변수로 써야 합니다.
왜 원인 인풋 변수라고 이름 지었냐구요?
위와 반대로
어떤 바른 시각 명제 x가 있을 때
이를 어디에 쓰일까 뭐에 결과적 인것 합리화에 적군이 쓰겠다! 라고 타인 즉 준거집단의 군중 설득 뇌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의 인식의 의도로 인풋화해서 원인단으로 쓰는.작용이기 때문이죠.
즉 총정리하면
공부는 (나는 세상의 모순과 대중운동의 상태가 어떠하든,나를 먼저 잡아 바로세우는 의도에서) 마음이다(라는 명제에 맞게 보고 나의 다른 행위&사고를 바로 세우는 측면에서 공부라는 대상을 세우며 발전하겠다)
라고 쓰라는 겁니다.
어떤가요? 대중이 화내며 해석한 버전과 어떤 차이가 보이시는지요?
이는 어려운 길이며 자신의 내면과 외부 세상에 대한 통찰 그리고 책임과 의도 선포 등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니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입니다.
하지만 공짜는 없듯 에너지를 많이 쓴 만큼 효익은 분명하게 올 것입니다.
사실 오늘 이 작용을 더 자세히 다루려면
독립적 사고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뤄야 할텐데 시간이 부족해 다음 글에서 설명을 추가하겠습니다만
..
자 오늘 사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인 공부는 마음이다 와 이게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할 이유에 대해서
논해봤습니다.
근데 여기서 끝낸다면 어쩌라고라는 의문이 남기에 이게 참인 경우 함의와 남은 우리의 일에 대해서 논하며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모든 것은 오늘 중요하게 논했듯이 저런 대중 사회집단 안의 우리 개개인이 속한 저항혹은 휩쓸림 상태에서
온다는게 오늘 글의 중요포인트입니다.
공부는 마음이다는 단순히 그냥 응.. 하는 명제로 소비할 게 아니며
이에 저항한 군중 의식의 반발작용에서 벗어나야 이 명제가 비로소 인식자에게 의미있게 안착되기 때문이죠.
즉 이 글은 단순히 '공부는 마음이다' 가 사실 주제가 아니었고 이를 왜 부정해야 하는지를 자극하는 우리 안의 군중의식 자동 기제 본능에 대해 깨어 있어야 하며, 저런 말들이 어디에 쓰일지 서로 군중개체들을 의식하고 두려워하며 저 말 자체를 사실 부정하려는 우리 안의 군중의식에 대해 깨어나야 함을 역설한 글입니다.
이렇기에 사회적 저항 작용과 이의 임계수준을 뛰어넘는 강력한 독립적 사고가 뒷받침 되어야 공부가 마음임을 알고 바른 전략을 세울수 있을 겁니다.
그럼 저 마음을 갖춰서 뭐가 좋기에 장황히 글을 썼을까요? 다 아는 말을 x소리 한 것일까요?
공부는 마음이다를 원인 인풋변수로 보면
다음의 논리가 명제가 비로소 참이 됩니다:
공부가 마음이라는 것은 소수 엘리트가 사회에서 지닌 지위나 상태의 결과적인 옹호 용도의 뜻에서 말한 것이 아니며,
우리는 이에 따라 스스로의 운명의 주체로,
현상황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 전개가 가능한 주체로 살아야 하는 책무를 받게 된다.
나는 공부가 마음이라는 말은
공부 자체는 중립물이며 그 수단에 대해
내가 어떻게 투영하는지에 따라 선과 악으로 나뉘는 결과로 현시됨에 대해 책임 지는 주체임을 아는 존재다.
공부에 대해서, 소수 엘리트를 욕하기 좋기때문에 그 논쟁 위해 위해 깎아내리는 의식이나, 반대로
공부로 구태의연하게 자신의 권력 수단으로 휘두르는
두가지 잘못된 길에 빠지지 않겠다.
마찬가지로 경쟁에서도
공부는 중립적인 행위의 연속이기에,
마음의 투영에 따라 천차만별의 값과 효율로 세상에 결과로 투영된다.
공부가 마음이라는 것은 마음의 시작 원인에 의해 크게 결과가 달라짐을 의미하며
우리의 의도가 무엇인지가 중요하며,
더 깨어있어야 하는 필요가 우리에게 오게 된다.
그 결과 공부의 길에서 조금 더 객관화된 것들이 보이게 되며 이를 통해서 전략적 우위를 주는 행위들을 바르게 판별하는 힘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다음편에서 이에 따른 효익등을 더 논의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