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미까 독도 옆 섬에 신세지고 있는 울쌔신릉리드입니다.
강의자료 만들던게 있어서 생각난 김에 클리앙에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독도를 가보기 위해 울릉도를 방문한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봅니다.
독도는 왜 한국땅입니까?제발독도는우리땅이라고우기지맙시다클리앙
그럼 옛날 사람들은 독도는 우리땅 노래를 부르면서 세종실록 지리지 50페이지 세째줄에 나와있다 라고 합니다.
요즘 애들은 모르겠습니다. 말을 안걸어봤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정답을 읊는 사람은 100명중 1명 혹은 2명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실효적 지배 라는 의미를 알고 어떻게든 답한 사람이 100명중 10명정도 됩니다.
뭐 사실 엄밀히 말하면 독도가 우리땅인 이유를 대라고 말하면
제대로 못 대는 것이 정상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땅인데 뭔 이유가 필요하죠?
어느날 갑자기 누가 부산 해운대가 왜 한국땅이죠?라고 묻는 정도로 어이가 없는 질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정상입니다.
근데 말이죠 여러분
저 간사한 왜인들은 다케시마가 왜인들의 땅인 이유를 학교에서 가르치고 세뇌시킵니다.
그러고 이 세뇌는 한/왜 가 아닌 제 3국의 사람이 독도/다케시마는 왜 한국/왜의 땅이라고 주장하시나요?
라고 물을때 왜인들은 주저리 주저리 이유를 말하고 한국인들은 어.... 그냥? 당연히 한국땅이니까요?
라고 답하면서 제3국민이 볼때 왜는 탄탄한 주장으로 자기땅이라 주장하고 한국은 억지부린다 라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특정 몇개의 사례로 전부를 일반화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제가 울릉도에서 만났던 여행객으로써 외국인들 모두
왜의 주장을 한국의 주장보다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독도가 우리땅이라고 우기지 않고 독도가 한국땅인 정당한 증거들로 무장하여
간사한 왜인들을 물리치고 국제사회에서 정당한 주장이 먹히도록,
아니 왜인들이 억지 부린다는 것을,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
독도가 우리땅인 이유를 물을때 (대다수의 클리앙 형님 누나들은)
독도는 우리땅에 노래에 나오는 세종실록 지리지 50페이지 세째줄 부터 기억을 할겁니다.
그럼 왜 역사속에 독도의 언급이 중요할까?
아니 지금 당장 한국이 지배하고 있는데 이거 부터가 이미 한국땅인데 뭐하러 역사속에서 따지냐
그렇게 따지면 고구려 만주벌판이나 대마도도 우리땅인데 우리땅이라고 말하지 않는거랑 역설적이지 않느냐
할 수도 있습니다.
왜 역사책 속에 언급된 독도가 중요하냐면
과거에 GPS가 없고 국책이 없고 국경이 없었을때 내땅과 쟤땅을 나누는 근거가 무엇이었을까요?
그건 바로 내 눈에 보이냐 안보이냐 입니다.
내 땅에서 바라봤을때 저기까지 보입니다. 저기까지 내 땅입니다.
쟤도 지 땅에서 바라봤을때 요기까지 보입니다. 요기까지 쟤 땅입니다.
그럼 중복지역이 있겠죠? 그런게 과거에는 국경지대였고 분쟁지역입니다.
그럼 독도는요?
독도는 한국의 영토인 울릉도에서 맨눈으로 보입니다.
왜인들의 땅 오키섬에서는 맨눈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서 부터 이미 독도는 과거부터 국경을 나누는 기준인 맨눈으로 보이냐에서 한국의 영토로 인식되었지
왜인들의 영토로 인식되지 않았습니다.
1454년 세종실록 -지리지-
우산(독도)과 무릉(울릉) 두 섬은 울진현의 정동쪽 바다에 있다. 두 섬은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
1531년 신 증 동국 여지승람
우산도 울릉도 무릉이라고도 하고 우릉이라고도 한다. 두 섬이 울진현의 정동쪽 바다에 있다.
1770년 동국문헌비고
여지지에 말하길 '울릉과 우산은 우산국땅인데 우산은 왜가 말하는 송도이다.'
1808년 만기요람
여지지에, "울릉,우산은 우산국 땅이며, 이 우산을 왜인들은 송도라고 부른다"고 되어있다.
1908년 증보문헌비고
우산도 울릉도 두섬으로 하나가 우산이도. 속 지금은 울도군이 되었다.
한국은 중세시대 부터 이미 울릉도를 한반도에 부속도서로써 인식하고 기록으로 남기고 있었습니다.
물론 왜도 역사서에 독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1667년 은주시청합기
이 두 섬(울릉도,독도)은 사람이 살지 않는 땅으로 고려를 보는 것이 운슈(시마네현의 동부)에서 온슈(오키섬)를 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일본의 서북쪽 경계는 이 주(오키섬)를 한계로 한다.
1791년 개정일본여지로정전도
에도시대 나가쿠보 세키스이라는 사람이 그린 지도입니다. 왜 전역의 지도를 그리며 색을 칠한것이 특징인데
독도와 울릉도 옆에 은주시청합기 라는 글자를 적어 이 이 곳이 왜의 영토가 아니어서 색을 칠하지 않은 근거를
은주시청합기를 레퍼런스로 제시한 것입니다.
물론 "역사서" 이다 보니 후에 침략과 정벌 등으로 영토가 바뀔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사서가 중요한게 왜는 간사하기 짝이없어 "15세기부터 다케시마는 왜의 영역이었다"고
거짓 주장을 펼치는데 반박자료로써 쓸 수가 있습니다.
조선이 독도는 왜의 것이 아니다라고 적은게 아닙니다.
왜가 스스로 울릉도와 독도는 우리것이 아니다 라고 적은 것입니다.
물론 넓게 이해해서 "15세기에는 우리땅이 아니어쓰므니다마느 후에 우리땅이 되어쓰므니다 그러니 왜의 땅이므니다"
라고 처음부터 얘기했으면 들어줄만 했겠죠
아X리도 지능이 뒷받침 되야지 털어먹습니다.
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
안용복으로 부터 촉발된 조선/막부간 울릉도 쟁계
안용복은 조선시대 노비입니다. 장군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노비에서 장군으로 출세한 사람이냐고요?
아니요 처음부터 끝까지 노비였습니다.
후에 사후에 아주 최근에 이정도면 장군만한 인물이네 라고 장군으로 추대되어서
안용복 장군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분의 생애가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노비였기에 언제 출생을 하였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외거노비였기때문에 고기잡이를 하며 울릉도도 가보게 되었고
납치당했고, 돌아왔고 빡쳐서 공무원을 사칭하여 또 갔고, 돌아왔고 공무원사칭죄를 물어 유배되면서 더이상 기록이 없습니다.
생애를 알만한 자료가 거이 없어서 생애를 중요하게 다룰 수가 없습니다.
다만 이 분 덕분에 정부 대 정부 사건이 터지고 문서화 되었습니다.
1693년 울릉도 근해에서 어업활동 중에 일본에 납치됩니다.
명백한 납치사건인데 친왜하는 사람들은 "1차 도일" 이라는 명칭으로
마치 왜가 나쁜짓을 안한 것처럼 포장하는데 <납치>를 했습니다.
그리고 알려진대로 막부 관백으로부터 울릉도 일대에 왜가 접근하지 않겠다는 편지를 받았고 돌아로려고 했습니다.
이 편지는 귀국길에 대마도 도주에게 뺏깁니다.
이 편지를 뺏김으로써 왜에게 공식기록상 안용복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오로지 조선 실록기록으로만 안용복이 등장해 왜가 "그건 조선의 일방적 주장이므니다" 라며 무시하긴 했으나
후에 발견된 기록에 의해 조선/왜 모두 안용복의 기록이 있는 것으로 교차검증되었습니다.
이 시대 때 왜와 조선은 외교적으로도 많이 얽혀있었습니다.
이미 임진왜란을 겪은 뒤라 왜가 더이상 찌질한 왜가 아님을 알았으며
그렇다고 무작정 왜가 하자는 대로 해줄 정도로 왜가 강대국까지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왜도 안용복이 귀국하고 난 뒤(실제론 대마도에 잡혀있었을때)
막부는 조선과의 시비가 있었던 울릉도 독도에 관해서 돗토리번에 물어보게됩니다.
1695년 돗토리번 답변서
인슈와 하쿠슈(이나바와 호키:현재의 돗토리현)에 속하는 다케시마(울릉도)는 언제쯤부터 양국(이나바와 호키)에 속하게 된 것인가?
다케시마(울릉도)는 이나바와 호키에 속하는 섬이 아닙니다.
다케시마(울릉도) 외에 양국(이나바와 호키)에 속하는 섬이 있는가?
다케시마(울릉도)는 마쓰시마(독도) 및 그 외 양국(이나바와 호키)에 속하는 섬은 없습니다
이때도 울릉도 독도를 자국의 영토라고 말하지 않던 왜 입니다.
그리고 최초 안용복을 납치한 왜인들이 가지고 있던 서류는 도해 허가서 입니다.
그 당시에는 국경을 넘어가는 것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입니다.
국경을 넘기 위해서는 허가가 있어야 했으며 이때 받는 것이 도해 허가서입니다.
과연 내 땅에 어업하러 가는데 국경을 넘는 허가서를 발급 받아야할 이유가 있을까요?
우리가 서울 산다고 부산 놀러갈때, 제주도 놀러갈때 여권들고 가야하는 이유가 있을까요?(신분증대체말고)
대마도에 납치되었다가 조선으로 무사 귀국한 안용복은 빡쳤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끌어 모았고 다시 울릉도에서 어업활동을 하는 왜인들을 쫒다가 왜로 가게 됩니다.
이때는 울릉도와 독도를 관장하는 장군(실제로도 없는 직책)을 사칭해서 일본으로 가게 됩니다.
이때 왜가 작성한 조서가 1696년 원록구병자년조선주착안일권지각서 입니다.
이 문서는 안용복을 최초 납치한 무라카미가문이 소장하고 있었고
알고 숨겼는지 몰라서 버려뒀다가 어?! 한건지 모르지만 2005년이 되어서야 공개됩니다.
그리고 이 문서가 발견됨에 따라 안용복이라는 인물로 부터 발생한 사건이 조선/왜 모두 문서로 기록된 것이 교차검증됩니다.
이 문서중에서 안용복이 말한 조선팔도 중 강원도 아래 울릉도와 독도가 있다고 적혀있습니다.
물론 이 문서는 안용복을 심문하면서 작성한 문서였기에
독도와 울릉도를 공식적으로 조선팔도에 포함되었다고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 안용복은 주장을 했고 기록으로 남겨졌고, 이 기록은 후에 시마네현 고시 제 40호에 반박할 수 있게됩니다.
막부는 1696년 1월 25일 "죽도도해금지령"을 내립니다.
안용복으로 부터 촉발된 울릉도 쟁계에서 왜는 "죽도도해금지령"으로 답변함으로써
울릉도, 독도가 왜의 영토가 아님을 공식화 하였습니다.
-------------------------------------------------------------------------------------------------------------------------------------------------------------------------------
이정도까지 대충 근대 이전 독도에 관한 조선과 왜의 기록을 비교해봤습니다.
이렇게 과거시대를 알고 가야 하는 이유는
왜는 지속적으로 "이미 독도는 과거부터 왜의 지배하에 있었던 섬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을 반박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음 글에 적힐 내용이지만 왜가 스스로 과거로부터 지배하에 있었다면 시마네현 고시 제 40호에 스스로 반박도 가능합니다.
LINK
이 재미없는 글을 여기까지 봐주셨다면
언제가 될지 모르는 2편이 올라온다면 그때도 잘 부탁드립니다.
덧글로 첨언 해주실분이 있다면 언제라도 환영합니다.
(근데 이 이후 일어난 일은 이 이후 일어난 일을 적을때 첨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