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원리 7편: 바른 방향과 해상도 : 클리앙

오늘도 빠르게 써내려가도록 하겠습니다. 


똑같이 또 강조합니다. 제가 말하는 "공부"는 포괄적으로 이해해도 되지만,공부원리편바른방향과해상도클리앙 

저는 특정한 조건을 지닌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 글을 씁니다. 


가벼운 암기 공부를 원하시는 분들, 절박하지 않은 분들,

피해의식이라고 일컫는 마인드에서 나오지 못한 분들이

아닌

 의식 탐구의 영역으로써의, 자신을 이끄는 수단이라는 차원이 추가된 의미의 공부가 필요하신 분들에게 글을 씁니다. 


이는 저의 과거의 공부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며

절박하게 공부를 해야 하는데 죽어도 안되던 과거의 저자신과

비슷한, 젊은 정신의 독자들을 위한 글이기에 강조함니다.

(이런 정신 조건을 만족했다면 물리적 나이와 관계 없습니다)


저 또한 일상이 있고 우선순위가 있는 와중에 이 글을 쓰며

스마트폰으로 빠르게 쓰니 오타나 정제되지 않은 문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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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또한 정신이라는 차원에 집중한, 바른 방향에 대해서 쓰겠습니다. 


공부에 바른 방향이 있을까요? 

인간의 의식차원 수준에 따라 존재합니다. 


공부라는 과정에서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원래 타인 훈계질 하려는 뇌가 비유적으로 진화하면서

강해진 사이드이펙트(부차물) 요소가 있습니다. 


무슨말일까요???


인간은 원래 완장질과 훈장질을 하는 게 가장 낮은 공부 뇌를 준 뇌 본성차원이며, 이게 정제되기 시작하고

이 질서를 알아차리고 바르게 쓰려 할때 메타적 인지가 생깁니다.


설명조차 필요 없습니다.

뭔가 설익은 앎일수록 우리 모두 초중고 혹은 그 이후라도

뭐를 들으면 바로 욕하는 대상쪽으로 그 지식이 쓰이며

뭔가를 더 알아갈때 그렇게 함부로 일반화를 그렇게 쉽게 못함을 알아갑니다.


지식은 원래 훈장질의 뇌를 다른 뇌작용으로 바르게 이끄는 

과정과 흡사 하며 사실 본질 작용이 같습니다.


진화과정에서 언어라는 것은 사실 세련되게

문제의 원인을 밝히는(지목) 것이며 생물체의 경우 

원인을 타 생물로 지목을 해서 해결하려는 것이 가장 큰 

본능입니다.

제가 이를 언급함은 이 작용 자체를 비판하려는 게 아니며

 이는 먹고 먹히는 진화상 반드시 필요한 상황에서 수렴되고 발전된 두뇌의 특성중 하나입니다.


자 뇌의 저런 작용이 있다 칩시다.

그런데 공부랑 무슨 상관이 있고 어쩌라는 건가요? 

 공부라는 것의 바른 방향이 뭔지 밝혀보죠. 


공부의 바른 방향을 쓰는 사람은

 타인을 누르고 훈장 완장질을 하려는 그 방향을 지닌 위에 나온 본능의 내용을 

자기에게 먼저 쓰고 자신의 모순을 밝히고 

모순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따르는 

메타적 행위로 인해서 다시 이 훈장질을 이제 함부로 타인 방향으로 쓰지 못하게 됩니다.

본능을 눌렀으니 고통이 있되 이 고통은 다른 좋은 작용들로 

인해 사라집니다. 


좀 비유가 거칠고 정확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한번 비유를 해보겠습니다.

즉 가장 쎈 아이가 힘으로 남을 때리는 본능을

이제 이 힘을 약자를 때리지 않고 자기처럼 약자를 때리는 

남을 막는데 쓰면서 영웅심이라는 다소 세련된 방향으로

구현되어 약자를 때리며 얻던 본능이 

우회되고 다른 고차원의미로 욕구가 충족되게 됩니다.

(즉 때리는 쾌감 및 제어안되는 본능이 다른 좋은 작용으로 인해 충족되어 더이상 그 차원에 머물지 않고 그 저차원 행위가 발현이 안됨)


공부에서는 이는 내가 지식으로 잘난척하고 

1차적 reaction(굳이 영어를 쓴 이유는 작용 반작용이라는 뜻 의미로 쓴 것임을 강조하기 위함 ㅡ 1차적 작용에서 촉발된 수동적 반작용)에서 

좀더 고차원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을 고려해서

바른 방향으로 자신의 공부의 의미를 이끌어가는 것에 해당합니다.




그럼 제목에 쓴 해상도는 뭘까요? 

공부를 욕하는 사람들은 '공부가 다 똑같지 웃기고 자빠졌네!!!' 식으로 공부는 바로 기득권이라며 깎아내리고 자신의 열등감을 욕을 하는데 쓰려고 합니다.

하지만 위에 서술된 바와 같이 공부에는 저런 차원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결국 인간은 구분이 가능하죠. 

이를 구분 가능한 인간은 기득권을 욕하고 깎아내리는 대상으로서의 공부와 나에게 의미와 방향을 주는 공부를 구분하는 

분별하는 능력이 생긴 것입니다. 


공부라는 주제의 글 댓글들을 읽으면

해상도라는 말이 클리앙에서 몇년 전 부터 쓰이더군요...

이런게 참 많은데 제가 내면에서 비유로 저를 이끌때 쓰던 

용어들이 

갑자기.클리앙에서 쓰일때 안도감과 놀라움을 느낍니다...

역시 인간은 다 비슷비슷하게 앎의 차원으로 수렴하는 구나 하고 말이죠.


위의 공부는.자신을 이끄는.의미로써 쓸때의 공부이지만

좁게는 수족이나 감각기관이 생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모든 앎, 지식은 깊어질때는 감각기관이 하나 더 생기는 것과 같습니다. 


당연히 보이지 않던 것이 분별이 되니 해상도라는 표현을 쓰는게 적합하죠. 

좀더 한 차원 더 나아가자면 감각기관이 다른 것이 하나 더 생기는 것으로 비유할수 있습니다.

전혀 다른 모드가 갑자기 인식되고 분별되고 나에게서 수족처럼 그걸 부리는 상태로 진화하기에 그렇습니다.



다음글을 미리 말씀드리는게 좋을 듯합니다. 

다음 글은 "당연한 것을 인정함에 대한 것입니다. 

다음편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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