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宗敎)는 마루,종교와절대주의불교는종교가아니다클리앙 으뜸, 높음을 뜻하는 宗 자와 가르침을 뜻하는 敎 자로 이루어진 단어로, '높은 가르침' '으뜸가는 가르침'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이 종교라는 말은 원래 싯다르타의 사상을 가리키기 위해 중국에서 만든 말이고,
이후에는 유교도 종교에 포함시키기도 했다고 합니다.
반면에 religion이란 말은 일반적으로 서구권에서 기독교, 이슬람교 등 '신 숭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일본 개화기 시절 서양 문물을 한자어로 번역하던 때에
(아마도 "서양의 religion에 해당하는 것이 동양에도 있으니 미개하다고 무시하지 마셈"이라는 느낌으로)
이 religion을 종교라는 말에 덮어 번역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러고 나니 종교라는 게 너무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힌두교와 유교와 불교와 기독교 등등 그 많은 것들을 모두 아우르는 정의라는 게 불가능해졌지요.
종교에 관해 찾아보다보면 '종교라는 건 명확하게 정의가 불가능하다' '종교에 대해 어떤 정의를 해도 반례가 등장한다'는 말을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불교나 유교는 신을 믿지 않는 무신론적 사상이니 종교가 아닌 철학이다'라는 식의
앞뒤가 뒤바뀐 기괴한 말까지 심심찮게 나오게 되었습니다.
( 물론 싯다르타의 사상에 관세음보살, 지옥 같은 힌두교 브라만교의 미신적인 내용을 추가한 불교의 종파가 있고
공자의 사상에 더해 형이상학적인 우주의 원리를 설명하겠다는 성리학 같은 유교의 분파가 있긴 하지만)
저도 그냥 습관적으로 '종교'라는 말로 퉁을 쳐서 말하는 경우가 많지만
엄밀하게는 신 숭배를 뜻하는 religion과 싯다르타나 공자의 사상을 가리키는 종교를 분리하여 생각하는 게 오해의 여지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한편으로는 무신론이나 공산주의, 주체사상 같은 것도 종교라고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로서는 '종교'라는 것보다는 더 넓게 '절대주의'라는 틀로 생각하면 어떨까 합니다.
절대주의란 우리 모두가 마땅히 믿고 따라야 하는 절대진리나 정답이 있다고 믿는 사상으로,
여기에 종교들과 '신이 없다는 게 절대적인 진리라고 믿는 신념', 박정희/스탈린 등 독재정부의 교시 같은 게 포함될 수 있죠.
종교인이나 독재정부는 "이것이 진리(정답)이다. 이것을 믿고 따르라"라고 합니다.
진리가 주어진 건 과거이니, 과거를 절대시하게 됩니다.
에덴동산, 황금시대, 요순시대 같은 완벽한 세상, 정답인 세상이 옛날에 있었고 지금의 세상과 인간은 타락한 존재일 뿐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공자왈 맹자왈' '모택동 동지의 어록에 따르면' 등 옛날에 쓰여진 경전, 선지자와 성현의 가르침을 암송하고 되새기는 것을 중시합니다.
인간과 세상은 계속 타락해오고 있다고 보는 사고방식이니 발전이니 진보니 하는 개념과는 반대되는 세계관입니다.
정답이나 진리가 있다는 사고방식은 물론 편리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게으른 사고방식, 혹은 생각하기를 포기하는 것이라고까지 하기도 하죠.)
하지만 그런 정답이나 진리는 일부의 집단에게만 통할 뿐,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동의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그런 집단 내에서조차 그렇습니다.
야훼를 숭배하는 집단을 예로 보자면,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 드루즈, 바하이 등으로 분열되고 그 중 기독교는 동방정교, 카톨릭, 개신교, 몰몬교 등으로, 또 그 중 개신교는 성공회, 장로회, 루터교회 등으로 분열됩니다. 한국에서만 개신교 교단이 수백개라고 하죠.
같은 교회 옆자리에 앉아있는 A 신도가 믿는 야훼는 여자는 목사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야훼이고, B 신도가 믿는 야훼는 그렇지 않은 야훼입니다. C신도의 야훼는 동성애자를 치료해야 한다는 야훼이고 D신도의 야훼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각 신도들의 머릿속에 있는 야훼들은 그렇게 무한한 조합의 서로 다른 야훼들입니다.
이렇듯 '진리'를 따른다는 사람들은 그 진리에 대해 무한히 분열하며 자기가 말하는 것만이 진리이고 정답이며 나머지는 모두 악마의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자신들에게 포섭되지 않는다면 그들을 저주하거나 말살하는 것도 진리(신의 뜻)입니다.
(어떻게 보자면 절대진리가 있다는 사고방식 그 자체가 폭력이 아닐지.)
사실 '답'을 한다는 건 설명을 한 발 뒤로 미루는 일입니다.
"왜 나가서 놀면 안된다는 거야?" "아직 해도 안떴잖아" "왜 해가 안 뜬 거야?" "아침이 돼야 해가 뜨지" "왜 아침에 해가 뜨는 거야?" "지구가 자전을 열심히 해야 해가 뜨는 거야" "왜 자전을 해?" "몰라" "왜 몰라?" "공부를 열심히 안 했거든" "왜 안 했어?" 라는 식이지요. 끝이 없는 과정입니다.
아마 종교인이나 독재정부가 하는 일은 진리나 정답을 알려주는 게 아닐 것 같기도 합니다.
사실 그들이 실제로 수행하는 작업은 저런 끝없는 설명의 과정 중 어딘가에 독단적으로 STOP 사인을 내걸고 (가능한 경우 폭력을 써서라도) 더 이상의 질문을 차단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건 신밖에 모른다" "인간이 어찌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으리오" "그런 건 경전에 나오지 않는 내용이니 중요한 게 아니고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다" "레닌 동지의 교시에 의문을 가지다니 넌 반동이다"
"모든 것은 그것을 받쳐주는 게 없으면 밑으로 떨어지는 게 당연하지. 이 땅은 코끼리가 받치고 있고 코끼리는 거북이가 받치고 있고 거북이는 뱀이 받치고 있으니 즉 뱀이야말로 우리 세상의 궁극적인 기반이다. 뭐? 뱀은 뭐가 받치고 있냐고? 뱀은 궁극적인 받침이라서 더 이상 받쳐주는 게 필요없다니까?"
"무언가가 있으려면 그걸 만든 누군가가 있는 게 당연하니 우주는 신이 만든 것이다. 뭐? 그럼 그 신은 누가 만든 거냐고? 신을 누가 만들었냐니 그런 바보같은 생각이 어디있냐"
결론은 "그러니 내가 (전)하는 말만 따르라."입니다.
절대주의와 반대되는 것의 예로 과학적 사고방식, 그리고 (다원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가 있을 겁니다.
과학자들은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 합니다.
"과학의 가장 중요한 발견은 인간이 무지하다는 사실이다"라는 말도 있지요.
과학적인 방법론은, "우주는 존재하고 인간은 그것을 관찰할 수 있다"는 등의 몇 가지 공리/전제 위에서 자연에 대한 더 좋은 설명을 찾아나가는 활동입니다.
과학교과서에 쓰인 모든 내용은 자연에 대한 잠정적인 설명일 뿐이고, 언제든 더 나은 설명이 등장할 가능성을 받아들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과학적 진술이란 미래에 틀린 것으로 밝혀지기를 기다리는 진술들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민주주의는 인간에 대한 불신을 체계화한 시스템입니다.
주기적인 선거로 지도자를 물갈이하고 권력을 나누어 서로 견제하게 하며, 그 모든 것을 감시하는 언론의 기능을 중시하는 시스템이지요.
민주주의는 너와 내가 서로 죽이지 않고 공존하기 위해 '인간은 평등하다'는 명제 등의 최소한의 공리/전제를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자유에 맞기는 다원주의를 바탕으로 한 사회계약입니다.
(공리로서 받아들인다는 것의 의미는, '인간은 평등하다'라는 걸 절대진리로 믿는 게 아니라 공존을 위해 '그냥 그렇다고 치자'는 것입니다.)
결국 과학적 사고방식과 민주주의의 공통점은 "뭔가를 절대적이라고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그 대상이 과학적 사실이든 민주주의든 무신론이든,
무언가를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절대주의자인 것이겠습니다.
절대주의는 태도의 문제이지, 대상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저는 민주주의를 채택한 사회에서는 그와는 반대되는 사고방식인 절대주의를 배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절대주의는 옳다 / 옳지 않다"라는 증명불가능한 명제를 주장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택하고 있는 민주주의라는 공리체계에는 맞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독단적인 진리관, 독재, 나치즘, 인종차별, 남녀차별 같은 것들은 민주주의와 모순되는 폭력이자 앵똘레랑스이고,
앵똘레랑스에는 똘레랑스를 적용할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하지 말자는 걸 민주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다원주의에 반대하는 걸 다원주의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