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삘 받아 쓴 글에 많은 분이 댓글 달아주셔서..가볍게 2탄 갑니다.
작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전국 국립공원 중 산으로 된 18곳 모두,등산년하면서느낀점클리앙 블랙야크 100대 명산 기준으론 절반쯤 인증했고 3년 전 이사한 집 뒤가 북한산이라 종종 갑니다. 가볍게 느낀 점은
1. 등산은 귀찮음과의 싸움이다.
이제 막 산을 올라가는데 덥습니다. 겉옷을 벗어야 하고 물도 마시고 싶고 간식도 먹고 싶고 스틱도 꺼내고 싶고 스마트폰으로 어디쯤 왔나 보고 싶고 선크림도 다시 바르고 싶고 등등.
그때마다 잠시 멈춰 서서 가방을 열고 닫는게 참으로 귀찮습니다. 그래서 허리 부분에 주머니가 있는 등산가방이 있습니다. 초코바 같은 간식을 넣어둡니다. 등산배낭 가슴쪽 끈에 물통을 넣을 수 있는 파우치도 있고요. 등산가방 중 가운데에 거미줄처럼 끈 있는 제품 있는데 가벼운 자켓을 잠시 고정하는 용도로도 쓰입니다. 굳이 가방을 벗지 않아도 손을 뒤로 뻗어서 자켓을 고정시킬 수 있습니다. 한 두시간 가볍게 편한 길을 가는 산행이라면 등산 가방 말고 힙색만 챙겨도 됩니다.
2. 봄여름가을은 가볍게
제 기준으로 봄여름가을에 어떻게 입나 봤더니.
1. 땀흡수 잘되고 가벼운 반팔, 때론 긴팔티,
2. 반바지 때로는 레깅스+반바지, 풀 많은 곳은 긴바지
3. 그리고 무게 100그램때 얇은 바람막이 자켓이 다입니다.
여기에 1500미터 이상 높은 산을 갈때는 좀 더 두터운 자켓을 하나 더 챙겨갑니다. 겨울산엔 보온용 패딩을 하나 더 챙기고요.
등산브랜드들이 비싸게 팔아먹는 고가의 자켓들은 사실 대부분 겨울 산행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3. 모자 대신 헤어밴드
나무가 많은 산에선 등산 중엔 모자를 안 씁니다. 시야가 답답하기도 하고 머리 속 열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죠. 대신 헤어밴드를 하면 눈 위로 땀이 흐르지 않고 머리에 열이 찰 일도 없습니다.
모자를 써야 하는 구간도 있습니다. 나무그늘이 없는 능선 구간, 정상에선 햇볕을 막기 위해 씁니다. 그리고 머리 위가 뚫려있는 선바이저는 안씁니다. 강한 직사광선이 탈모를 부를 수 있다고 해서요.
(추가) 겨울엔 비니도 필수입니다. 머리쪽 혈관 보호를 위해서요. 다만 쉴때는 잠깐 벗으셔야 합니다. 벗으면 머리에서 장엄한 사우나 온기가 올라옵니다. ㅎ 갇혀있던 땀이 나오는 거죠. 그런데 진짜 추운 산에선 머리카락이 또 곧바로 업니다. 그땐 바로 써주세요. 압력솥의 증기만 잠깐 빼낸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4. 스틱은 필수죠.
스틱 세계도 참 다양한데 여러 스틱 써보다가 그냥 접고펴기 쉽고 가격 싼 1만원대 스틱 씁니다. 수십만원 하는 탄소섬유 스틱도 있는데 일반 스틱과 무게 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탄소섬유스틱을 쓰느니 등산 배낭 무게를 좀 더 줄이는 게 낫습니다. 또 탄소섬유 스틱의 경우 겨울철 산행에서 스틱이 언다고 하나? 아무튼 계속 삐그덕삐그덕 이상한 소리를 냅니다. 그러다가 툭 부러질 수 있다고 하더군요.
5. 3만원 짜리 양말이 있다
제 기준으로 땀이 가장 많이 나는 곳이 발입니다. 그래서 발이 답답한데 등산화 신고 벗기가 또 참 귀찮죠. 그래서 이쪽 세계에 울양말이 있습니다. 두꺼운데 땀이 안나요. 아니 나는데 그걸 잘 흡수해줍니다. 뽀송뽀송해요. 겨울철엔 또 따뜻합니다. 등산화 바닥 쿠션이 딱딱하다면 쿠션감 좋은 울양말 신어도 됩니다. 다만 가격이 사악합니다. 3만원 이상 합니다. 처음엔 이해 안 갔지만 한번 신어보고 딴 양말은 못 신겠습니다.
6. 10만원짜리 장갑도 있다.
이건 바람이 아주 많이 부는 겨울산 기준입니다. 두꺼운 장갑위에 미튼, 벙어리 장갑도 껴야 동상에 안걸립니다. 1월에 소백산 갔다가 사진찍는다고 잠시 장갑 벗었다가 동상 걸리는 줄 알았습니다. 정말 순간의 몇초에도 손끌이 빠르게 얼더군요. 산을 오르는 중엔 미튼도 같이, 중간에 쉴 때 미튼을 잠깐 벗으면 됩니다. 비싼 제품 중엔 고어텍스 들어간 것도 있는데 각각 10만원쯤 합니다.
7. 항상 챙기는 비상물품.
등산하면서 사고 당한 적이 두 번 있습니다. 두 번 다 하산길이었고 다행히 119가 올만한 거리라서 도움받아 하산했습니다. TV에서 보는 헬기가 우아악하고 출동하지 않아 다행입니다. (여담으로 119대원께 헬기이송비용 물어보니 무료라고 하더군요)
등산하다가 혼자 고립됐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때 필요한 건 일단 물입니다. 그래서 물은 항상 내가 마시는 양의 두 배를 챙겨갑니다. 처음 조난시, 물이 다 떨어져서 옆 샘가에서 흙섞인 물을 마신적도 있네요.
둘째가 스마트폰 보조배터리입니다. 내 위치를 알아야하고 알려야 합니다. 특히 산에선 통신신호가 약해서 스마트폰 배터리가 금방 닳습니다. 매서운 추위의 겨울산에선 스마트폰을 그냥 바지 주머니에 넣고다니다간 곧바로 방전돼버립니다. 산행 가기 전날, 꼭 완충된 스마트폰 보조배터리를 챙기시고, 겨울이라면 스마트폰을 등산복 겉이 아닌 속, 즉 등산복 안쪽 자켓에 넣어 보온해주세요.
셋째가 은박으로 된 보호비닐입니다. 다이소 가면 1천원 합니다. 체온유지를 위해 필요합니다. 가을산에서 고립된 적 있는데 4시쯤 되니 어두워지면서 정말 갑자기 추워지더군요. 혹시 모를 조난을 대비해서요.
(추가) 작은 우산입니다. 방수자켓이 있는데 왜 우산이냐? 하시겠지만 우산만큼 근본적으로 방수 잘되는 물건은 없어요 ㅎ 산에서 우산이 웬말이냐 하시겠지만 능선길을 걷는다면 결국 우산이 승자입니다. 다만 손발을 다써야 하는, 즉 바위길에선 우산이 번거로운게 사실입니다.
8. 등산의 즐거움
유튜브 보면 수많은 등산 유튜버가 있고 영상을 보면 산이 정말 멋있습니다. 다만 항상 느끼는 건 현장에서 느끼는 풍경과 바람, 공기냄새 등을 유튜브 영상이 100분의 1도 표현 못해낸다는 겁니다. 가보셔야 느낍니다.
미식의 즐거움도 있습니다. ‘시장’ 즉 배고픔이 이 최고의 반찬이라고, 고된 산행 후에 산에서 먹는 건 다 맛있습니다. “화기를 써도 된다“고 인정한 산은 없으니 도시락과 간식 챙겨오시면 됩니다. 귀찮다면 보온병에 뜨거운 물 받아 정상에서 컵라면 드시고 내려와서 식사 하세요. 등산로 출입구 근처에 그 동네 유명한 맛집은 다 모여있습니다.
또 국립공원 중 대피소에선 버너 사용이 가능합니다. 삼겹살, 라면, 스테이크까지 산에서 먹는 건 아끼지 말고 맛있게 드세요.
9. 등산의 편안함?
골프 치려면 일단 4명 모아야 하고 부킹해야 하고 1인 그린피에 카트, 캐디비, 이동비 등등해서 웬만한 호텔 하루 숙박값이 들던데 등산은 그런거 없습니다. 혼자가도 되고 부킹 안해도 됩니다. 예전에 국립공원 입장료도 있었는데 노무현 정부 때 여가증진 차원에서 없어졌고 사찰들이 통행세 명목으로 받던 문화재입장료도 올해 봄부터 사라졌습니다. 그러니까 식비랑 교통비만 있으면 됩니다.
10. 새벽도 혼자서도 가보자.
저같은 경우 같이 종종 산다니는 지인이, 작년 9월 북한산 새벽길에 만난 분이었습니다. 둘다 그쪽 등산로는 초행이었고 제가 길을 잃어 도움을 받았습니다. 둘다 새벽에 산에 온 건 빨리 되돌아가 돌봐야 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산은 새벽에도 오르는 분들 많으니 혼자서도 가보세요. 장엄한 일출은 덤입니다. 하산 후 남은 주말도 온전히 즐길 수 있습니다.
11. (추가로) 좀 부지런해야 한다.
예전 골프장 다닐 때 아침 6시에 클럽하우스 밥먹을 때 ”새벽에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여기가 맛집이네“ 농담했는데 등산하곤 잽도 안됩니다.
국립공원 기준 하절기 입산 허용시간이 새벽 3시부터입니다. 서울에서 지리산을 간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밤 10시에 출발해 새벽 2시쯤 도착합니다. 장비 등 챙기고 잠시 쉰 후 출발합니다. 그리고 빠르면 12시쯤 하산하거나 아예 대피소에서 하루 자기도 합니다.
서울 북한산 유명코스 가보면 주차장이 새벽2시에 이미 만차입니다. 그래서 그분들 내려오실 시간(대략 4~5시간 후)에 맞춰 가는 게 주차하는데 낫습니다. 설악산 소공원 주차장은 전날부터 만차입니다. 그 꼭두새벽에 주차장 가득한 자동차와 웅성웅성 거리는 사람들이 상상이 잘 안가시죠? 아무튼 우리나라 사람들, 노는데 참 부지런합니다. 그리고 산이 그만큼 매력이 있다는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