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를 쓸까말까 망설였는데,수학뭘배워야하나클리앙 제 글에 보기드문 공감수가 찍히고 댓글도 많이 달린데 힘입어서 좀더 써봅니다.
들어오시는 괴수분들이 아무 얘기안하시는걸 보니 크게 잘못 설명하는건 없다고 믿겠습니다. :)
댓글로 간단히 적긴 했지만 사실 적으려는 내용은
수학에서
- 같은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 최소한의 조건을 찾기
- 같은 조건하에서 가능한한 많은 결론을 내리기
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글에 적은 것은 사실 자연과학을 배우는 분들에게 필요한 것인데, 저 이야기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 빌드업을 하다보니 삼천포로 갔다가 안 돌아왔네요. 빌드업이 중요하면서도 문제입니다. 이번 글도 여러모로 다른 쪽으로 빠질 위험이 상당히 있긴 합니다.
1. 어떤 결론을 내릴 때 가장 중요한 조건이 뭘까요?
- 이건 대학원 입시 공부를 하다보니 깨닫게 된 것인데, 4년간 배운 과목들을 정리해서 시험을 볼 준비를 하는데, 여러 과목에서 비슷한 내용이 많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universal algebra 얘기도 잠깐 했는데, 그런 비슷한 것들이 누군가가 잘 체계를 잡아놓은 것 같았네요. 근데 문제는, 제가 풀던 풀이를 보던 지인이 (universal algebra 공부해서 알려주던 그 친구입니다) 가장 중요한 조건하나가 빠져있는데 그게 되겠냐라고 하던거였습니다. 예전 교과서를 뒤져보니 조건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걸 잊어먹었던거죠. 조건 하나쯤 잊어먹는건 제가 가끔 저지르는 일이니 어쩔 수 없는데, 문제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다는거죠. 가장 중요한 조건이 뭘까요?
- 지난 번 글에서 얘기한 내용 중 가장 중요한 (이 문구가 자꾸 나오네요.. 의식적으로 반복하고 있다고나.. ^^) 것 중 하나는 역시 추상화일 겁니다. 순수수학자가 아닌 이상 우리가 알고 싶은건 숫자가 왔다갔다 하는건 사실 아니란 말이죠. 현실에 보이는 무언가 잘 모르는 대상을 알고 싶어서 그 대상의 일부를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겁니다.
- 역시 모든 것을 다 표현할 수는 없으니까, 다 표현하면 그 대상 자체겠죠, 그 대상에 대해서 알고 싶은 성질에 관련된 것을 추상화 시키는 겁니다. 물리에서 중요한 것은 사물의 운동이니까 운동에 관련된 질량과 위치, 시간 등을 숫자로 표현하고 그걸 추상화 했다고 하는거죠.
- 숫자로 표현만 해서 되는 건 아니고 그 숫자 사이에, 우리가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무언가를 추가합니다. 그게 대소 비교 (혹은 순서) , 덧셈/뺄셈/곱셈/나눗셈의 연산 등이죠. 혹시나 제가 (3)을 쓰게 된다면 그건 숫자와 연산체계를 만드는 것이 될 것 같기도 합니다만, 그건 정말 엄밀한 표현이 필요한데 제가 지금 할 수 있을지 의문이네요.
- 추가되는 무언가가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현실과는 가까워지고, 추상적인 대상은 어려워집니다. 사실 수학을 배울 때는 거꾸로 생각을 했습니다. 추가되는 무언가가 너무 없으면, 직관이랑 너무 달라져서 알고 있던 정리를 써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 어렵다고 생각했죠. 근데 그 정리를 성립시키는 가장 중요한 조건을 알게 되면, 그 조건이 빠진 경우, 그 정리는 안된다고 쉽게 알수도 있게 됩니다.
- 빌드업을 하기 위해서 예제를 들고 싶은데 생각나는게 없네요. 빌드업 얘기를 괜히 했나봅니다.
- 어거지를 좀 쓰자면, 수 체계 얘기가 나왔으니, 방정식을 생각해봅시다. 자연에 있는 숫자는 사실 자연수이긴 하지만 추상화 시키다보니 음수도 생기고, 분수도 나오고, 유리수, 무리수 얘기가 나오는데, 학교에서 배울 때 기억이 나실 것 같은데 이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방정식을 풀다보니 필요했던 거긴 합니다. 2x=1 이라는 방정식을 풀려니 분수 혹은 유리수가 필요했던 것이고, x^2=1을 풀려니 무리수가 필요하게 되는거죠. x^2=-1을 풀려니까 복소수까지 나오게 되었던거고요. 복소수까지 나오고 나서 드디어 방정식을 다 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걸 completeness라고 불렀는지 closed라고 불렀는지 기억이 안나네요. 이것의 의미는 수체계를 복소수까지 확장시키면 계수가 복소수인 방정식의 해가 복소수 내에서 모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걸 빌드업해서 생각해보면, 우리가 자연계의 현상을 방정식으로 만들고 그것의 해를 찾으려면 적어도 복소수라는 수체계까지는 만들어냈어야 했다는거죠.
- 물리하시는 분은 아인시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그에 따른 로렌츠 수축 계산을 보셨을 것 같네요. 거기에는 3차원 공간에다가 ict라는 축을 하나 더 집어넣어서 (i는 복소수의 i이고, c는 광속도, t는 시간입니다) 계산하면 아주 쉽게(!!! 이런거 믿으면 안됩니다. ^^) 광속 가까이 움직이는 물체의 시간이 느려진다거나 질량이 커진다거나 하는 결론이 나온다고 합니다. 저는 그냥 식을 보기만 했습니다. 저한테 추가 설명을 요구하지마세요. 제가 얘기하고 싶은건, 이렇게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추상화를 할 때도 뭔가를 추가하거나 한다는겁니다.
- 인류의 큰 문명은 이런 어려운 것들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발전했고, 그 때 조건을 추가하거나 빼거나 하는 수학적 방법론이 굉장히 유용하게 쓰였다고 생각합니다.
2. 삼천포로 또 간 것같아서 다시 돌아와봅니다.
- 그럼 이런 내용이 우리의 일상 생활, 혹은 회사 생활에서 어떻게 쓰일까요? 도움이 되긴 하는걸까요?
- 회사 생활하면서 이런저런 책을 좀 읽었었는데, 자기계발을 별로 안좋아하는 저로써는 자기계발해야한다는 내용보다는 방법쪽을 좀더 고민했었습니다.
- 10여년 전 유행했던 책 중에서 로지컬씽킹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경영컨설팅으로 유명한 맥킨지를 다녔던 일본인이 쓴 책인데, 그 책에서 맥킨지에서는 보고서를 작성할 때 MECE라는 방법론을 많이 쓴다고 적혀있었습니다.
- 이 내용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신입사원이 입사하면 MECE를 소개하고, 가끔은 책을 선물도 하면서 내용을 설명해주고, 관련된 숙제도 내주곤 했습니다.
- MECE는 검색하면 굉장히 많은 자료가 나오기 때문에 꼭 책을 사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 문제를 해결할 때, 고려해야하는 조건 등을 MECE에 맞춰서 정리해보는 것은 정말 도움이 됩니다. MECE는 ME와 CE 두가지를 얘기하는 것인데, Mutual Exclusive, Collectively Exhaustive 의 약자입니다. 수학을 영어로 공부하신 분이라면 ME가 우리가 소수를 배울 때 나오는 "서로 소"를 의미한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정리를 할 때 그 각각이 독립적이 되도록, 그리고 그 전체는 알고자 하는 대상의 전체를 표현하도록 해야한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해보시면 쉽지 않습니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나열해봐도 전체는 어차피 표현할 수 없긴 하지만 그래도 많은 것들을 표현하도록 노력해야합니다. 각각이 배타적으로 독립적이 되도록 하는건 연습하다보면 조금은 하실 수 있을 겁니다.
- 제가 지금까지 경험해본 바로는, 여기까지만 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상당히 있습니다. 조건을 배타적/독립적으로 나열하고 전체를 표현만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거죠. 문제의 해결이 결국은 동어반복인 결론이 보이는 문제로 바꾸는 것이다 라는 표현을 제가 지인들에게 쓴 적이 있는데, 이 내용은 혹시라도 (4)까지 쓰게 되면 나올 수도 있겠네요.
- 조건만 정리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조건을 정리한 것을 잘 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나는대로 정리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 그 방법을 정리할 때도 MECE를 적용해보세요. 서로 연관되어 보이는 것을 묶어보고, 독립적인건 따로 챙기고, 그러다보면 전체에 기여하는 비중이 보이기도 합니다.
- 그 다음은 사실 쓸 수 있는 리소스랑 수행할 사람의 성격에 따른 차이라고 생각됩니다. 쉬운 것을 먼저 하는 사람이 있고, 제일 큰 비중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먼저하는 사람이 있고, 리소스를 많이 투자해서 한꺼번에 하는 사람이 있고, 하나씩 차근차근 하는 사람이 있는거죠.
오늘도 꽤 길어졌습니다. 결론을 내리자면, 수학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굉장히 좋은 도구 중 하나이고, 오랜 기간 배운 수학에서 조건을 줄이거나 독립적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조건을 가지고 가능한한 많은 결론을 내리는 것 등을 잘 고민하고, 현실의 자신에게 닥친 문제에 적용해보신다면 조금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역시나 이런 것들을 "어떻게" 배울 수 있느냐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많은 고민을 스스로 해보는 것이 중요하고, 막힐 때는 다른 분들의 조언도 들어야 하고, 생각들을 논리적으로 전개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