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17편 연재: 동물적 하층 인식과 제어 : 클리앙

글의 경고문

1. 저의 공부실력 수준은 미천하나 제가 고통을 겪으며 미약하게나마 깨달은 것들을 명시화하고 필요한 이들과 나누기 위한 글입니다. 

즉 공부 입문자 왕초보가 왕초보 다음 단계인 "초보"로 입문 하기 위해 겪었던 것을 저와 비슷하게 심적/상황적 어려움을 겪는 입문자들에게 쓰는 글이니 공부의 중/고수분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을 겁니다. 

2. 다수를 위한 글이 아닙니다. 즉 타이틀 등에서 소수를 위한 글이라는 말에 흥분 상태로 와서 논쟁하시려고 하시는 분은 많은 것을 알지만 그런 분들과 논쟁을 하는 의도로 쓴 것은 아니며 여기서 소수는 엘리트 의식과 폐쇄주의를 지향하는 의식에서 쓴 것이 아닙니다.

즉 그런 흥분 논쟁의 감정 상태로 글을 클릭하신 분들은 안심하고 뒤로 가기를 눌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3. 글의 가독성& 정리 상태는 좋지 않습니다. 저자인 제가 시간 날때 빠르게 - 거의 대부분 폰으로 쓰며,공부편연재동물적하층인식과제어클리앙 글의 목적도 상업 용도나 인기등 타인의 관심을 얻기 위한 글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삶에 비춰보아 맞는 말이 있는지 독자인 내가 나아가기 위해 이런 글에서 취할 것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저자의 의도에 집중하시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본문


독자님들 건강히 잘 지내셨는지요?

오늘도 짧고 간명하게 쓰려고 다짐합니다:)


본문이 상당히 거창하고 아스트랄하죠?

그냥 직관적으로 적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공부에서 피해야 할 함정 그리고 반대로 추구해야 할 것이 바로 

제목에 나온 것과 같습니다. 


바로 공부는 스스로의 동물에 불과한 

하위차원을 제어하며 나아가는 

의미도 있다는 겁니다.



이를 설명하려면 더 필요한 개념도 있죠

즉...공부는 사실 .. 

제가 아래처럼 파악하는 관점이 있습니다. 


바로

 하위 인식 기능 뇌와 그의 저차원 인식에

 묶인 인격과 자아를 

그 하위 인식을 관장하는 상위차원과 그에 해당하는 인격

두개의 조화라는 거죠. 


다시 말해

공부에서 마음과 기능은 

각 기능차원 국소 뇌들: 전두엽

이렇게 대비 되며

각각은 

다시 그에 맞는 인격등이 있습니다.


그래서 왜 이걸 논의하는걸까요?

당연히 후자가 더 우월하니 

후자가 전자를 관리 하는 것임을

알아야 바른 공부 패러다임이 되니 말하는 거겠죠?


이러한 파악은 게시판의 제가

 우르르 몰려다니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대중 다수의 인식과 대비됨을 

똑똑한 분들은 눈치 채셨을 겁니다.


대다수는 아직도 지능이라는 말을 철썩같이 믿습니다.

(몇몇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런 문장을 보고 지능을 부정하는 거라고 이 문장과 지능 부정 구분도 못하고 바로 화내면서 덤벼들기도 합니다만.. 그들을 위해 저도 지능 개념은 참 좋아하고 많이 쓴다고 밝힙니다)

공부라는 것에서도 

공부의 성취 즉 결과는 철저히 지능이라는 추상 일반화된 의미 하나로

파악하는 인식수준에 묶여 있습니다.


이는 문제라고도 할수 없습니다. 

아래의 문제에 비하면 말이죠.


바로 그 문제란

자기의 삶또한 이런 하급 수준의 인식으로 보고

세상과 자신의 인식영역에 잡힌 모든 것을 

이런 피상적 수준으로 보고 생을 끝까지 살아간다는 점입니다.

저의 글은 언제나 글에서 말한 단어인 공부가 사실

"그 공부"(예로 수능 및 토익)에 국한 되지 않는 초차원의 학습을 다룬다고 강조한 바 있죠.


제가 이렇게 공부라는 단어의 범주를 크게 확장한 

차원에서 본다면 

"공부"란 것을 인생에서, 마음에서 보고 다룰 때

그 결정요인을 

대중들 그 자신이 편향적으로 파악한 '지능'이라고

귓동냥으로 들은 수준으로 알고

스스로를 제한하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울까 상상이 

되실 겁니다.



자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겠습니다. 

그렇다면 저런 뇌로 이원화 해서 이해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당연히 바른 시각이 생기니

 공부를 잘 하는데 도움이 되겠죠. 


저는 위와 같은 파악이 주는 효익 또한 두가지로 

파악합니다.


1. 인격?적 인생 관점 및 자기 제어 차원

공부라는 대상에 대한 의미화 및 주체성 성립

저렇게 공부를 하위 동물적 기능적 인식체에 불과한

나를 상위적 자아 및 기능이 이끈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안다면..  

이런 의미가 다시 저 인식으로 인해 도출이 가능합니다.

:

내 위치가 아무리 낮더라도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관점이 생긴다. 왜냐하면 내가 나를 이끄는 의미체로서

공부를 대하게 되며,

우익적 정치 성향의 약육 강식으로 빼앗기고 다시 갈취하는 식으로 공부또한 그렇게 보지 않게 되며

혹은 반대로

진보적 정치성향게시판에서 흔히 보는 약육 강식의 패러다임에서 

단지 약자를 편들어야 한다는 약자들의 울분으로 공부를 파악하지 않게 된다.


또한 가학성이 짓눌러 숨겨진 시각인

공부는 그냥 견디면서 하는 거다

라는 아무 대책 없는 바보들이 성공한 사람들이 단편적으로 바른 것에 말한 것을 자기 파괴적으로 일반화한

저런 언어 사용도 사라지게되겠죠. 

(공부는 무조건 인내와 참음이 아닙니다. 마치 오줌을 

계속 참으면 참을성이 길러지는 것이 아니듯..

저런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이 어떤 문맥에서 저 말을 한정 지어 말하는지 등 지혜가 없는 인식 수준에 머물때

저런 말을 하며 자신과 공동체에 잘난척하고 스스로도 파괴합니다)



2. 공부기술적 차원

저 바른 시각은 단지 공부라는 것을 대하는 인식에만 기여하는 것은 아니죠.

공부 자체에도 쓰입니다.


공부는 사실 내가 어떻게 내가 아는 것에만 엉터리로 

사실과 인식으로 온 객관적으로 봐야 하는 대상을 

내 개념의 틀에 때려맞춰 쉽게 끼워넣으려고 

하는지를 자각하고 이런 것을 

자각하는 고수준의 눈을 기르는 과정입니다..

머리 좋으신 분들은 이 말 보고 바로 아실듯합니다.

즉 인식에 대한 인식 메타인식이죠.


제가 공부는 능력이고 재능이다 식의 글에

사실 참여 안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죠.

그런 글을 바로 믿고 빠지고 그 댓글에서 벌써부터

정치질 하려는 아이들이나 아니면 그 40 50대 아저씨들으 경우 메타인식이나 의미적 추체 등을 논하면

알아들을 수 있지 않기 때문이죠..


옆길로 샜습니다만...

공부를 할때 인식에서 언제나 내가 이걸 파악한 

"모양새"를 객관화하고

반대로 바르게 와야 할 "모양새" 즉 그 개념 자체의

객관을 있는 그대로 보는지 검증의 연속이

공부하는 세션때 중요하죠.

이때도 언제나 하위적인식을 상위적 인식이

보고 아이를 이끌어주듯 따뜻하게 이끌어주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오랜만에 썼는데

폰으로 빠르게 쓰다보니 잘 전달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도움되시길 바라며 다음편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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