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랜만에 글을 다시 써봅니다.
오늘은 조금 중요한 주제를 다뤄보겠습니다.
또한 글 본문을 여기 서두인 외부 액자와 나눠서
존대어를 쓰지 않겠습니다.
오늘 주제는 공부에서의 노력에 대한 것입니다.
본문:
바로 들어가보도록 하자.
저자의 경우 글에 밝힌 바 있듯 뛰어난 학력 성취를 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학력 성취 수준이 낮은 꼴찌 수준에서
상위로 어느정도 서서히 올라왔다고 계속 밝힌 바 있다.
그렇기에 바로 극적인 변화가 아닌 완만하게,공부단상연재편클리앙 여러
공부의 수준이 다른 집단들과 소통하고 경험하며
상당히 다른 수준들을 다 몸소 체험한 바가 있다.
이렇기에 각각의 수준별로 인구를 나눌 때
가진 특징들에 대해 재밌는 특징을 나름 발견하며
왜 차이가 발생하는지 관찰하는 기회를 가지고 경험을
많이 했다.
하지만 우리는 뭔가? 공부라는 주제에서 가장 바른 하나를 골라야 하는게 우리의 목적이다.
즉 우리는 공부를 논하니
실용적으로 가장 큰 차이를 부르는 어떤 차원적 특성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오늘의 주제는 노력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말하는 노력이라는 단어와 개념은
잘못되어 있다.
즉, 절대 다수의 인구가 공유하는 노력이란 단어는 노력에 대해서 완전히 잘못 정의되어 있다.
위의 명제에 주목하길 바란다.
내가 상위권에 올라가 안정적으로 되었을 때 나의 뒤를 돌아봤을 때가 있다. 이 이룸이 우연이 아니라면 그 전 중위권때 그 긴세월 동안 가진 마음가짐과 이룸을 가능하게 한 마음가짐 두가지가 차이가 명확하게 보였을 것이라고 짐작할수 있을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하나가 바로 노력을 재정의했던 것이며 다수라는 집단에 대한 재정의였다.
왜 나는 노력에 대해서만 말하지 않고 다수라는 대상까지 끄집어 내서 말했을까? 이게 더 중요해서다.
앞으로도 저자인 나는 위와 같은 화법을 많이 쓸 것이고 사실 이번 편전부터 반복해왔다.
이런 화법이란, 메타를 말한다. 메타? 즉 어떤 대상 주제를논할 때, 어떤 개념을 보더라도 그 개념 내용만이 아닌 개념의 의식주체들 중 하나인 군중과 사회가 인식하는 모양/양태를 같이 포괄해서 보라는 말이다.
공부는 특히 그러하고 노력이라는 단어 또한 마찬가지로 이런 메타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말이 살짝 다른곳으로 빠졌으니 다시 명제를 보자.
노력이 잘못된 정의로 이해된다고 했다.
간략히 말하면 사회의 대중은 사회의 부속품과 같이 살고 최면 걸리듯 집단에 대해 맞춰있는 의식체로 살아간다.
우리 문화는 이런 가운데서도 다른 문화권보다 노력/남에게 보여줘야 하는 타인의식적 양태가 너무 강하다.
이렇기에 노력이라는 것을 할때 사실 진짜 필요한 것이 아닌
타인이나 사회가 원할 것 같은 것을 하기 바쁘다.
근데 이 다수와 노력은 무슨 연관인가?
바로 내 생각보다도 더 많은 인구의 비율이 노력이라는 관념을 잘못 정의하고 있다는 점이였다.
아니, 나 자신또한 내가 이런 집단은 아니다 라고 자부한
그 집단의 오류에 빠져 있다는 점과 그걸 자각하는게 변화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럼 이렇게 차이를 낳는, 바르게 정의된
진정한 노력은 무엇인가?
저런 사회적 뇌 즉 나라는 개인이 준거집단이나 사회집단에 대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자각하게 하는 객관적 시각이 필요하며
이는 내가 뭘 의식하고 느끼고 있는지 최소한 자기 자신에게 솔직함이 있어야 가능하다.
나는 뭘 위해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느끼는지 등을 적나라하게 스스로에게 묻고 따져보는 혼자만의 시간과 시각이 필요하다.
공부에 있어서는 나는 뭘 의식하고 있었고 나또한 내가 비판하던 의식에 사실 사로 잡혀 영향 받는 것인데 숨겨져있는 다른
시각으로 피상을 추구하며 두려워하는 것은 없는지 그것은 무엇인지 자각해야 한다.
이런 조건이 있어야지만 우리가 아는 좁은 차원의
노력이라는 게
의미가 있게 된다.
즉 전체적으로 논한 내용을 정리하자면
사회에서 잘못 이해한 노력의 정의는
무조건 열심히 빨빨거리는 행위로 볼수 있는데
이는 사실 지엽적인 것이며 목적이 없이는
반드시 엉뚱한 것에 쓰이게 된다.
즉 이를 좁은 의미의 노력이라고 칭해보자.
메타적 생각을 이용해 이제 노력이라는 것을 이해한 우리 스스로가 의미의 주인이 되고 스스로와 대화한 결과
도출된 우리 일의 의미와 할일은 위의 것에 선행되어야 한다.
즉 저 좁은 의미의 노력은 이 의식이나 행위가 없다면
변질된채 엉뚱한 것에 남의 시각 만족을 위한 요식행위로
귀결될 뿐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스스로에게 참되게 의미를 추구하고 결정했는지라는 큰 '노력'이다.
하위의 '노력'은 이 앞에 아무 힘을 못 쓴다.
바른 의식이 세워졌다면 이제 우리는 노력이 쉬워지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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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에서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