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 앤더슨 영화를 보면 광기에 가까운 대칭 표현들과 독특한 그만의 미장센과 컬러팔렛을 쉽게 느낄 수 있어요. 그의 수많은 영화 중 낭만주의를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평가 받는 그랜드 부다페스트호텔이라는 유명한 영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낭만주의를 화면으로 잘 옮겨둔 사람은 컴퍼니3의 시니어 컬러리스트 질 보그다노비치이고요. 해당 영화는 포토크롬기법을 기반으로 파스텔 톤 느낌을 내기 위해 수많은 준비와 후반작업이 들어간 작품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필름 그레인을 넣어서 혹은 특별한 럿을 사용해서 구현한 작업이 아닙니다. 그래서 색 보정이란 게 색만 만지는 작업이 아닌 종합적인 시각 작업의 결과물이란 것을 반증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질 보그다노비치는 존윅 시리즈,독특한색감을만들어내는방법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feat질보그다노비치클리앙 블랙아담, 소스 코드 등 헐리웃 유명 영화를 작업했어요. 그녀의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의 색 보정 작업 방식을 통해서 어떤 식으로 이미지에 접근했기에 웨스 앤더슨의 동화적인 세상을 구현할 수 있었는지 공유해볼까 합니다.
1.작업의 시작
*준비과정
보통 영화 촬영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스크린테스트를 합니다. 헤어 메이크업한 상태에서 카메라 앞에서 테스트를 진행하죠. 이때 영화에 사용될 lut을 미리 만들어서 카메라 테스트 때 바로 활용하면 어떤식으로 최종 룩이 결정되는지 어느 정도는 가늠할 수 있게 됩니다. 생각보다 너무 de-sat인지 아니면 high contrast인지, 낮에는 괜찮은데 밤엔 이상하다 등등 미리미리 체크해서 추후에 cinematographer로 부터 영상을 받아 보정을 시작할 때는 나름의 기준이 생기는 것이지요.
이렇게 미리 작업준비를 하는 이유가 에러에 미리 대비한다는 측면만 있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인 영상제작자들은 deliver 하는 채널이 많지 않습니다. 저는 주로 유튜브 및 각종 sns에 올라가는 영상을 만듭니다. 하지만 헐리웃에서, 특히 마블의 경우 다양한 딜리버리가 요구됩니다. 3D, 2D, EDR 등이 있으며 또 VFX와도 연계 작업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재생이 되는지 체크하는 부분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또 요즘 HDR 작업도 많이 하고요. 그래서 단순히 현장에서 최종 룩의 느낌을 미리 본다는 개념을 넘어서는 준비작업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해당 작품은 촬영이 모두 끝난 후에 해당 작업을 제안받았고 VFX 과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단계였습니다. 이에 질 보그다노비치는 감독 웨스 엔드슨과 함께 룩에 대해 더 심도 있게 의견을 나누며 룩을 완성해나갔습니다.
웨스 앤더슨은 1900년대 초반의 오래된 포토크롬 이미지를 기반으로 룩을 만들기 원했어요. 그래서 질 보그다노비치와 함께 미국 의회 도서관의 온라인 사진 크롬 라이브러리를 참고하면서 룩을 완성해갔고요. 포토크롬은 1800년대 후반에 나온 컬러 사진 인화법인데 사진 술이 개발되기 전에 장소나 장면의 컬러표현을 했던 방식입니다.
포토크롬 이미지의 특징들은 굉장히 많은데 기본적으로 화려한 채도의 특성 때문에 이미지에 강도를 더하고 생동감을 만들어냅니다. 더불어 색의 디테일을 잘 잡아낼 뿐만 아니라 색간의 전환이 굉장히 부드러운 편이라 딱 끊어지는 강한 느낌이 아닌 색간의 부드러운 그라데이션 변화가 눈에 띄고요. 또 19세기 말에 쓰인 사용된 만큼 빈티지 느낌도 얻어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웨스 앤더슨과 함께 최종 룩을 구현하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조사하고 각 시대에 맞는 이미지를 구현하는 데 노력했습니다. 시대마다 화면비를 다르게 했다는 특징도 있지만 색도 함께 더불어 바꿔서 작업을 진행했어요.
특히 30년대에는 웅장하고 젠체하는 느낌의 주인공과 호텔을 보여주기 위해 라이트한 핑크 그리고 딥한 블루와 레드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60년대에는 젊고 낙관적인 시대상을 반영하기 위해 따뜻한 금빛 그리고 노란색과 녹색이 굉장히 풍부하게 느껴지고요. 마지막으로 현세대는 조금 더 중립에 가까운 팔레트를 사용했습니다.
2.그레이딩 테크닉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은 모두 필름으로 촬영되었고 아비드에서 편집된 이후 다빈치리졸브에서 피니쉬 된 작품입니다. 우선 질 보그다노비치가 자주 강조하는 말이 있는데 그건 바로 BALANCE 입니다. 이미지에 어떤 것을 더하면 빼줘야 한다는 의미인데 조금 더 자세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1.POWER WINDOW BALANCE
다빈치 리졸브에서 파워 윈도우라는 기능이 있습니다. 원하는 부분만 선택해서 작업하는 기능 중 하나인데, 질 보그다노비치는 해당 기능을 통해서 밸런싱하는 작업을 자주 해요. 예를 들어 프레임의 한쪽에 사람이나 피사체가 많이 있다면 반대편 쪽을 어둡게 하면 무게감이 늘어날 테고 이를 통해 균형을 맞춰가는 거죠.
해당 법률대리인을 만나는 장면에 가운데 그리고 왼쪽에 인물이 모여있습니다. 오른쪽에 윌리엄 데포가 혼자 있고요. 생각보다 윌리엄 데포가 어둡게 처리되어 있죠? 이걸 억지로 밝혀본다면 이미지의 균형이 깨짐과 동시에 시선이 분산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예시를 볼게요.
인물 3명이 대화하는 장면에서 키가 작게 표현된 토니 레볼로리가 어둡게 그레이딩 처리가 되어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장면에서 이렇게 처리한 것은 아니지만요. 항상 질이 얘기하는 것 중 하나가 색과 스토리의 조합이 무너지면 관객의 시청을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스토리와 분위기상 긴장이 유지하며 이미지에 밸런스를 잡아가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2-2. Cont vs Sat
두 번째 균형은 대비와 채도입니다. 질 보그다노비치는 균형을 위해 이미지에 (대비나 채도) 같은 강한 요소를 넣으면 다른 요소를 빼야 한다고 자주 말해 왔어요. 예를 들어 대비가 높다면 채도를 조금 빼주어 균형을 맞추는 거죠. 주로 리프트, 감마, 게인을 통해 샷을 균형 있게 만들고 color separation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고 해요. 해당 균형은 사실 질만 언급하는 것이 아닌 워너브라더스의 존 다로 부터 유명한 컬러리스트들은 모두 입을 모아 하는 얘기입니다. 촬영도 그렇고 편집도 그렇지만 할 줄 안다고 다 해야 하는 게 아닙니다. 필요한 것만 적재적소에 넣어서 사용하는 것이죠. 특히 질은 이미지 자체가 충분하고 강력하다면 굳이 다른 툴을 사용해서 작업을 팔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있고요. 제가 느끼기엔 질 보그다노비치의 경우 채도를 조금 강하게 가져가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ㅎㅎ. 또 해당 영화 작업할 때 질은 최대한 강한 필름룩을 얻기 위해 암부쪽을 강하게 작업했어요. 최대한 심플하고 고급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이미지가 자체로 강한 느낌을 준다면 최대한 유지하는 방향으로 작업했습니다. 이런 작업 특징 때문에 전반적으로 암부쪽이 강하다고 느껴지고 특히 해당 장면에서는 명암대비가 매우 강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3. 입체감 형성
영상에서 입체감을 만들어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배경 흐림과 같은 얕은 심도도 있지만 색으로 입체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수도사가 나오는 케이블카 장면에서 알파매트를 사용해서 뒷배경 산을 앞의 전경보다 더 따뜻하게 만들어서 심도를 표현했고 더불어 파워 윈도우 사용을 통해서 따뜻하고 파란 느낌을 더해주었고요.
4. 스킨톤
질 보그다노비치의 경우 피부톤 작업을 할 때 피부톤 자체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해당 장면의 라이팅과 주제를 고려해서 작업합니다. 물론 때로는 일부러 관객의 눈길을 끌기 위해 밝게 작업하는 때도 있지만 해당 챕터마다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요. 해당 교도소 장면에서도 이미지의 주제와 맞는 비슷한 톤들이 유지되고 있고 주변 보면 환경에 맞게 부드럽게 스며들게 작업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피부톤만 따로 화사하게 빛난다거나 그러지 않고요. 색보정이 익숙하지 않을 특정 부분만, 즉 얼굴만 따로, 옷만 따로 잡아서 depth map을 통해서 또는 알파매트나 다양한 툴을 통해서 부분적으로 작업하실 텐데 상황에 따라 해당 작업은 필수이나 전반적인 조화를 잘 보면서 작업하면 여러분들의 이미지가 더 매력적으로 보일 것 같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