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지식관리 : 옵시디언으로 구현하는 제텔카스텐과 궁극적인 목표 (2부) : 클리앙

안녕하세요?개인지식관리옵시디언으로구현하는제텔카스텐과궁극적인목표부클리앙 생산적생산자입니다. 지난 개인지식관리 1부에 이어 2부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1부를 보지 않으신 분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유튜브 영상 보기


개인지식관리: 당신의 지식 성장과 창의성을 극대화하는 방법 (1부)


어두운 배경 빛나는 뉴런 연결망 연결된 지식 성장.webp


개인지식관리의 방법론 : 제텔카스텐 메모법

어떻게 적어놓으면 글쓰기에 효율적일까?

우선 글쓰기를 지향하는 메모 시스템인 제텔카스텐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기로 하겠습니다. 제텔카스텐은 독일의 사회학자인 니클라스 루만 교수가 만든 메모법입니다. 니클라스 루만은 사회학의 거대 이론을 만든 거장이고, 400여편의 논문과 60여 편 이상의 책을 출간한 압도적인 생산성을 발휘한 인물입니다.

제텔카스텐이 글쓰기를 지향한다는 말은 루만이 교수였으니까 논문이나 책을 쓰기 위해서 계속해서 글에 대한 작업을 했을 겁니다. 결국 학술적인 글쓰기는 새로운 지적 자극과 기존 지식과의 통합적 사유에서 나옵니다. 논문을 찾든, 책을 보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루만은 지식의 습득 과정에서 밑줄 치고, 여백에 메모하는 방식은 아무 쓸모가 없다는 걸 이전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됐습니다.


제텔카스텐은 메모상자다

제텔카스텐(ZettelKasten)은 독일어로 '메모 상자'라는 의미입니다. 제텔(Zettel)이 메모, 카스텐(Kasten)이 상자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루만은 메모상자 안에 카드로 된 메모를 적으면서 가장 연관된 기존 메모 뒤에 새로운 메모를 추가했습니다. 이렇게 연관된 메모가 이어서 나오게 됩니다. 메모상자에 메모가 쌓이는 건 한 주제의 통찰이 발전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고, 반대되는 내용이 이어서 담기기도 하고, 하부 주제로 분기(Branching)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앞뒤로 메모끼리 연결은 물리적으로 일대일로 연결되는 겁니다. 그런데 연결은 앞뒤만이 아니라 다양한 주제에 있는, 물리적으로 먼 곳에 있는 메모와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거리가 먼 메모끼리 연결하기 위해서 각 메모는 고유한 넘버링을 부여해서 각 메모가 가진 넘버를 참조하는 방식으로 하나 이상의 연결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루만은 메모 자체도 중요하지만 메모가 서로 연결된 개수만큼 지식의 가치가 더해진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구슬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개별적으로 떨어져 혼자 있는 지식은 힘이 약합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연결되어 뭉치기 시작하면 새로운 논리와 통찰이 생깁니다. 같은 또는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지식들이 모여서 예상치 못한 형태를 만들어냅니다. 이 형태를 잘 정리해서 말이나 글로 나타내면 특정 형태의 콘텐츠가 됩니다.


최종 활용할 퀄리티로 작성하기

니클라스 루만 교수는 A6 크기(10.5 x 14.8 cm)의 카드에 자신이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을 자신이 이해한 문장으로 기재했습니다. 하나의 메모엔 하나의 내용만 담겼고(원자성), 최종 글에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퀄리티로 작성됐습니다. 처음엔 메모 퀄리티를 너무 신경쓰면 작성 자체가 어려울 수 있으니 조금 타협하고 진행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하나의 메모가 가진 연결 중에서 제일 좋아보이는 논리의 흐름을 고릅니다. 그러면 이미 최종 글에 활용될 정도의 퀄리티로 작성됐기 때문에 메모를 배치하면서 콘텐츠의 흐름을 짜보기 좋습니다. 이렇게 루만 교수는 제텔카스텐에 90,000장 이상의 메모를 담았습니다. 90,000장이 숫자로 보이니 엄청 많아 보이지 않지만, 메모상자의 실물을 보면 엄청나게 방대하고 거대한 지식이 모여있는 걸 보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연결된 지식의 네트워크를 타고 다니면서 연결을 다양하게 구축하고, 콘텐츠 생성을 가능하게 하는 메모법이 제텔카스텐입니다. 제텔카스텐은 이렇게 모듈화된 개별 지식을 같은 양식으로 저장해두고, 나중에 필요할 때 연결되는 메모를 이어 붙이면서 글을 완성할 수 있는 겁니다. 실제로 제텔카스텐의 메모를 이어 붙이기만 해서 글이 완성되는 마법이 일어나지는 않지만,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서 시작하는 것보단 훨씬 나은 건두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텔카스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생산적생산자 유튜브 채널에 있는 아래 링크의 영상과 더불어 메모별 설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CoGFEoFXQT8


제텔카스텐은 만능인가?

제텔카스텐 시스템 안엔 주제별로 연결된 메모가 앞뒤로 모여있습니다. 내가 관심있는 주제에 대한 메모들이 모여 있는 겁니다. 그 메모들을 앞뒤로 논리에 맞춰 배치하고 추가할 내용이나 연결하는 문장은 직접 적으면서 글을 완성하면 됩니다. 글쓰기는 결국 자신의 논리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메모들은 작성자의 논리에 맞춰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연결에 대한 이유를 자신이 말로 설명할 수 있으면 그건 작성자 고유의 논리를 따르는 겁니다. 이 연결 논리에 대한 검증은 지속적으로 메모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다시 보면서 제대로 연결하고 작성했는지 피드백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저는 제텔카스텐에서 영구메모를 만들 때 노트를 연결하고 나서 연결에 대한 이유를 꼭 적어둡니다.

제텔카스텐이 모든 걸 해주진 않습니다. 사용하다 보면 개인지식관리 전체를 커버해주지 못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제텔카스텐은 글쓰기를 명확하게 지향하는 메모법입니다. 글쓰기에 최적화 돼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글쓰기에 사용할 작은 블록을 미리 만들어놓고, 블록들을 조립하는 방식으로 글쓰기를 진행하는 겁니다. 레고를 해보신 분이라면 같은 레고 블록을 갖고 만들기를 해도 다양한 결과물이 나오는 걸 경험해보셨을 겁니다. 제텔카스텐 메모법은 지식의 블록을 어떻게 만들고 글쓰기로 향하면서 결과물을 만들지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레고 블록이 있어도 조립은 여러분이 하셔야 하듯이 블록을 다양하게 조합해보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레고 완성물(글)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건 본인의 못입니다.


연결하는 메모법이 중요한 이유

그러면 우리는 왜 지식을 연결해야 할까요? 제텔카스텐 방식으로 메모하고 연결하는 과정은 뇌의 뉴런을 만들고 연결을 강화하는 과정과 유사합니다. 뇌의 뉴런은 가소성(Plasticity)을 가집니다. 평생 고정된 형태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특정 주제에 대한 공부를 하면 새롭게 뉴런이 생성되고, 뉴련 간 연결의 강도가 올라갑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배우는 게 중요한 이유는 이 뉴런의 연결을 계속해서 새로 만들고 확장해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뇌가 굳어서 고정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뇌와 유사하게 계속해서 새로운 지식이 들어오고, 기존 지식과 연결되고 관계를 맺으면서 뉴런의 연결이 구축되고 강화되는 것처럼 뇌 외부에 이런 연결을 만들어나가는 게 지식의 보물창고인 개인지식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입니다.

지식의 연결을 많이 만드는 일은 뉴런 간 시냅스를 강화하는 일과 비슷합니다. 지식간 연결의 강도가 강하고 많은 연결이 있을수록 장기기억으로 넘어갈 확률이 큽니다. 제텔카스텐 메모는 계속해서 기존에 갖고 있는 메모를 다시 보게 해줍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메모가 연결될 때 기존 메모와의 연관성을 파악하고 연결을 진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메모의 가공, 연결 작업 과정 중에서도 마주치는 수많은 영구메모들은 새로운 연결의 생성과, 또 다른 통찰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루만은 영구메모 자체보다 영구메모가 갖고 있는 연결의 네트워크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식 자체보다 지식이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해서 제텔카스텐 시스템을 만드는 겁니다. 영구메모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연결의 임의성, 다양성이 우리가 구축하는 네트워크의 가치의 핵심입니다.


상향식 VS 하향식 글쓰기

제텔카스텐 메모법을 활용한 글쓰기에 많이 언급되는 단어가 상향식(Bottom Up)입니다. 기존의 글쓰기에서 자주 경험하는 건 하향식(Top Down) 입니다. 하향식 글쓰기는 결론을 정해놓고 결론으로 가는 데 필요한 자료와 정보들을 수집하는 과정입니다. 수직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갖는 위계가 있는 조직에선 자주 볼 수 있는 의사결정 과정의 흐름이기도 합니다. 임원진이 업무를 지시하면 팀장이 확인하고 팀원이 움직이는 구조입니다.

반대로 상향식 구조(Bottom Up)가 필요한 이유는 연구와 콘텐츠 제작의 과정에선 처음에 설정한 결론이 진행과정에서 뒤집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연구 진행 과정에서 새로운 통찰이 등장해서 기존 주인공의 자리를 대신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향식 구조는 결론을 정해놓고 가니,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 주장이나 정보는 의도적으로 배제해야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게 통찰의 측면에서 더 좋은 방향일 수 있지만 내가 원래 가려던 방향이랑 다르니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겁니다. 하향식 글쓰기는 결승점만 보고 달리는 단거리 달리기와 비슷합니다. 옆을 보거나 다른 길로 가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처음에 정해진 트랙으로만 가는 겁니다.

제텔카스텐의 장점은 여기에서 드러납니다. 제텔카스텐의 메모가 모여나가는 방향은 애초에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기존의 메모와 비슷한 주장, 정보가 담길 수도 있지만 완전히 반대되는 메모가 추가되고 연결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기에 다양한 의견을 통합하고 검증해서 더 나은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워렌 버핏의 파트너이자, 전설적인 투자자인 찰리 멍거가 언급한,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통해서 종합적인 판단을 내리는 '격자형 정신 모델(lattice of mental models)'의 개념과 비슷합니다. 회사에서 필요한 의사 결정을 내릴 때 다양한 부문에서 수집한 정보, 과거에 있었던 일, 미래에 있을 일, 시장 상황의 변화, 소비자의 니즈, 회사의 경영 계획, 팀의 목표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결정을 내립니다. 제텔카스텐은 다방면의 관련된 정보가 수집되고 연결되어 있는 지식관리 시스템입니다. 다각적인 방면의 메모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의사결정에 도움을 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신의 콘텐츠(출판이나 글, 영상 등), 비즈니스 의사 결정이나 아이디어, 새로운 가설 설정 등도 제텔카스텐을 통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상향식은 언제나 옳고 좋은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상향식은 언제나 옳고 하향식보다 좋은가요?' 제텔카스텐을 배우면 모두 상향식 글쓰기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 나오는 문구처럼 "상향식은 좋고 하향식은 나쁘다" 일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제텔카스텐(원제 : How to take smart notes) 책에선 상향식 구조의 장점을 말했지만, 저자인 숀케 아렌스의 인터뷰 영상을 보면 상향식과 하향식을 필요에 맞게 섞어서 쓰라고 합니다. 사실 글을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방향이 위로 가든 아래로 가든 글을 써내는 게 중요합니다. 숀케 아렌스의 말은 목적지에 가기 위해서 먼저 길을 정해보고(하향식), 가다가 다른 길이 보이면 그것도 다루면서(상향식) 가라는 겁니다. 실제로 글쓰기를 할 때 제텔카스텐 방식으로만 하지는 않습니다. 주제를 생각해보고, 불릿 포인트로 아웃라인을 정하고 머리에서 떠오르는 생각으로 채워보고, 채워지지 않을 땐 메모상자도 보고, 옵시디언도 보고, 여기에도 없으면 인터넷 검색이나 AI와 대화하면서 학습을 진행합니다. 이렇게 추가 학습을 하면서 알게 된 부분은 다시 제텔카스텐의 메모로 남겨 놓을 수 있습니다.

출처 : Tinderbox Meetup - May 7, 2023: A Discussion with Sönke Ahrens, author of How to Take Smart Notes
https://youtu.be/nx1Ax8z_eDY


그리고 옵시디언 전도사인 유튜버 닉 마일로가 강연(PKM Summit)에서 얘기한 대로, 상향식(가드너)과 하향식(건축가) 방식을 모두 섞어서 쓸 줄 알아야 한다는 내용도 나옵니다. 여기서는 건축가(Architecture)와 가드너(Gardener)에 맞춰서 설명합니다. 정해진 계획 없이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정원을 가꾸는 게 정원사(상향식) 스타일이고, 처음부터 정해진 계획이나 도면에 따라 체계적으로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게 건축가(하향식) 방식으로 비유됩니다. 링크를 활용해 자유롭게 메모를 연결하는 방식은 정원사 스타일이며, MOC(Map of Contents)처럼 메모 간의 연결을 체계적으로 구조화하고 정리하는 과정은 건축가의 방식입니다. 우리에게는 먼저 구조를 정해놓고 진행하는 수렴 방식(하향식)과, 통찰이 모이는 대로 이끄는 방향대로 나아가는 발산 방식(상향식) 모두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책을 쓴다고 생각할 때, 미리 목차를 정해두고(하향식) 그 목차 안에 모이는 메모들은 제텔카스텐의 방식(상향식)대로 작성할 수 있습니다. 목차의 제목만 정해두고 그 안에 들어가는 내용은 자연스럽게 메모가 모이는 흐름에 따라 진행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큰 틀인 목차를 따라가면서, 세부 내용은 상향식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또한, 큰 흐름인 목차 자체도 진행 과정에서 필요한 경우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습니다.

출처 : This Secret Principle Will Transform Your Notes : https://youtu.be/q0pQh69iPWA


연결하는 노트 프로그램 옵시디언

제텔카스텐을 구현하는 프로그램의 조건

그러면 제텔카스텐 메모법을 구현하기에 적당한 프로그램은 무엇일까요? 원래 제텔카스텐 메모법의 사전적 의미는 '메모상자'입니다. 니클라스 루만의 메모상자는 한약방에 있는 서랍 같은 곳에 아날로그 메모로 보관했습니다. 물리적인 공간을 차지하는 메모상자와, 안을 채운 인덱스 카드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메모 카드와 메모가 들어갈 상자를 갖고 다녀야 할까요? 업무할 때가 아니면 수첩도 안 들고 다니고, 신용카드 하나도 더 들고 다니기 부담스러워하는 시대엔 크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항상 갖고 다니는 도구가 있습니다. 잘 때도 머리 옆에 두고 자고, 일어나서도 가장 먼저 보고, 화장실 갈 때도, 해외에 갈 때도, 갖고 다니는 도구가 있습니다. 바로 스마트폰입니다. 그리고 스마트폰에서 받은 입력을 가공하고 추가 작업할 수 있게 데스크탑에서도 볼 수 있게 동기화가 가능한 노트여야 합니다. 그리고 제텔카스텐은 앞에서 설명한대로 몇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기술적으로 구현되기 위해서 필요한 노트 프로그램의 조건을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첫번째는 연결을 쉽게 구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텔카스텐은 연결이 핵심인 메모법입니다. 자신의 언어로 적고, 정해진 양식으로 적는 것보다 중요한 게 연결입니다. 지식의 연결은 이해를 깊게 하고, 새로운 창의적 아이디어를 형성할 수 있는 핵심입니다. 저에게 제텔카스텐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글쓰기를 지향하는 연결형 메모법'이라고 소개할 것입니다. 그리고 노트 수가 많아져도 연결을 빠르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두번째는 데이터가 지속 가능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 사용자가 있는 노트 프로그램의 경우, 새롭게 나타나는 대체 프로그램이 기존 노트를 가져오는 마이그레이션을 지원합니다. 에버노트가 아직 망하진 않았지만, 대부분의 신규 노트 프로그램에선 에버노트의 데이터를 가져오는 걸 지원합니다. '새 술은 새 자루에 담아야 한다'는 말에 저는 공감합니다만, 핵심적이고 필요한 자료는 기존 데이터베이스에서 새 프로그램으로 넘어와야 합니다. 그리고 공통으로 쓸 수 있는 파일 포맷 형식을 갖는 게 좋습니다. 에버노트 경우 enex라고 하는 파일을 백업해놔도 다른 프로그램에선 열 수 없습니다.

세번째는 구축해놓은 노트 사이의 연결을 파악하기 쉬워야 합니다. 연결만 해두고 나중에 다시 보지 않으면 작성할 이유가 없습니다. 연결을 파악하는 데 가장 쉬운 건 시각적으로 노트간 연결을 파악할 수 있는 기능입니다. 제텔카스텐의 연결 관계는 텍스트로만 파악하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앞뒤로 이어져 있는 메모만 연결하는 게 아니라 최대한 다양한 연결을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필요에 맞게 프로그램을 커스터마이징해서 쓸 수 있으면 좋습니다. 제텔카스텐을 위한 노트 프로그램을 찾는 게 목적이지만 다른 기능들도 커버할 수 있으면 사용 중 프로그램 이탈을 방지하고, 끊기지 않고 집중해서 작업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노트 프로그램의 사용 빈도와 활용도가 올라갈 것입니다.

이런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한번 물색해보겠습니다. 제가 오랜 시간 사용한 워크플로위도 후보로 넣어보겠습니다. 워크플로위도 위의 기준을 대부분 충족합니다. 연결을 가능하게 하고, 다른 아웃라이너로도 넘어갈 수 있고, 다양한 형식(마크다운, JSON, OPML, 텍스트)으로 Export 가능합니다. 노트 사이의 연결은 백링크를 통해서 파악할 수 있는데, 다양한 기능은 조금 아쉽습니다. 워크플로위는 아웃라이너 자체에 집중한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노션은 어떨까요? 노션도 제텔카스텐 방식 구축은 가능합니다. 노션 정도의 유저를 갖춘 프로그램이면 망할 일은 당분간 없어 보이고 망한다 해도 다른 프로그램에서 마이그레이션을 지원할 겁니다. 노트 사이의 연결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다만 노트(페이지)간의 연결을 파악하는 기능성은 떨어집니다. 노션의 커스터마이징은 거의 무한으로 가능합니다.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관리와 다른 작업자와 같은 내용을 실시간 공유하면서 편집하고, oopy 같은 서비스를 이용해 노션 페이지를 서비스로 구현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렇지만 개인지식관리 관점에서 볼 때, 기능의 복잡도가 높고 지식관리보다는 할일 관리, 데이터 축적 및 관계형 DB 관리에 특화돼 있습니다.


개인지식관리엔 옵시디언(Obsidian)

연결을 가능하게 하고, 속도도 빠르고, 망하지 않을 문서 포맷을 사용하고, 노트 간 연결을 쉽게 시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커스터마이징의 자유도까지 높은 프로그램이 과연 있을까요? 다행히도 있습니다. 바로 옵시디언이라는 프로그램입니다. 이미 들어보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처음 들어보신다면 차근차근 하나씩 알려드리겠습니다.

옵시디언(Obsidian)은 개인의 위키(Wiki) 구축을 목표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입니다. 옵시디언을 만든 개발진은 워크플로위와 비슷한 아웃라이너 서비스인 다이널리스트(Dynalist)를 만든 팀인데요. 기존에 사용하던 Wiki 프로그램을 개인지식관리에 맞게 구현한 게 옵시디언입니다. 위키를 살펴보면 다양한 개념과 인물, 사건들, 다른 문서로 향하는 하이퍼링크가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이를 개인이 구축할 수 있게 해주는 프로그램이 옵시디언입니다.

옵시디언도 위키처럼 다양한 지식간의 연결을 지향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옵시디언의 연결은 '〖〖(더블 브라켓)'에서 모든 게 시작됩니다. 더블 브라켓이라고 하는 겹괄호를 치면 즉시 연결할 수 있는 노트 리스트가 뜹니다. 그 상태에서 단어를 입력하면, 제목에 해당 단어를 포함하는 노트 리스트가 뜹니다. 원하는 노트에 가서 엔터를 치거나 클릭하면 쉽게 연결이 끝납니다. 연결의 기능성이 좋고, 반응하는 속도도 빠릅니다. 그리고 똑똑한 노트 검색도 가능합니다. 기존에 작성된 '영어 공부 하는 방법'이라는 노트를 찾고 싶으면 '영 공 하'를 치면 노트가 뜹니다. 이런 식으로 스마트하게 노트 사이의 연결을 찾고 구축할 수 있습니다.


도구에 대한 반론, 그럼에도 옵시디언인 이유

이렇게 옵시디언은 제텔카스텐을 위해서 태어난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그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제텔카스텐에 적합한 프로그램입니다. 이렇게 노트간 연결을 쉽게 구현하게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프로그램입니다. 거기다 그래프뷰 기능이라는, 노트 사이의 연결을 시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주고, 그래프뷰를 통해서 새로운 노트의 연결 가능성도 탐색할 수 있습니다. 지금 와서 이런 말 하는 게 이상하지만, 제텔카스텐은 사실 어느 시스템에 구현하든 상관 없습니다. 노션, 에버노트, 로그시크, 워크플로위, 롬리서치, 타나, 캐퍼시티, 메모장, 워드 파일 등 어디든 상관 없습니다. 제텔카스텐의 원리를 잘 이해하고 자신의 워크플로우와 성향에 맞는 도구로 선택하시면 됩니다. 그럼에도 가장 적합한 프로그램에 대해서 살펴본다면 옵시디언이 적합한 후보 상위에 랭크되게 됩니다.

언제나 도구는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돕는 것이어야 합니다. 도구 없이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제텔카스텐을 잘 구현할 수 있습니다. 도구를 통해서 모든 것을 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쓰는 도구가 사라지면 어떻게 하실건지 생각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언제든 손으로도 할 준비가 돼 있고, 보다 적합한 프로그램이 나타나면 준비 기간을 거쳐 넘어갈 준비가 돼 있습니다. 너무 자주 갈아타는 건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들어 좋지는 않지만, 새로운 도구에 대한 가능성은 열어두고 사용하시면 됩니다. '나는 옵시디언 쓰기로 했으니 이게 아니면 안된다' 하는 생각은 안 하셔도 됩니다.

옵시디언을 추천 드리는 이유를 정리하자면, 모바일과 데스크탑, 태블릿 전기기와 OS를 아우르는 멀티 플랫폼 지원과 깔끔한 동기화, 노트간 연결을 보여주는 유려한 시각화 인터페이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용 속도, 플러그인을 통해서 나에게 필요한 기능을 추가해서 쓸 수 있는 자유도입니다. 저는 모든 것을 하나의 프로그램에서 하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특정 서비스 기능의 100% 까지 없어도 되고 70% 정도만 있어도 괜찮은 기능은 옵시디언 안에서 쓰면 됩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쓰다 보면 그 프로그램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까먹고 안 쓰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하나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저만 그런건 아닐거라 생각합니다. 옵시디언엔 다양한 커뮤니티 플러그인이 있고 사용자들 중 개발자도 많아서 필요한 걸 만들어서 올려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플러그인은 크롬 브라우저의 확장 프로그램처럼 필요한 걸 찾아서 옵시디언에 설치해서 쓴다고 보시면 됩니다.


개인지식관리의 철학과 방향성

개인지식관리의 목표와 지향점

개인지식관리의 목표를 생각해보면 여러분의 시스템이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개인이 경험하는 지식의 입력과 가공, 출력의 순간이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통합적으로 관리되는 게 개인지식관리입니다. 개인의 지적 경험이 유기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발전되고 확장된 결과물이 나오는 과정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지식이 들어오고, 가공되고, 나가는 과정을 알려면 결국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워크플로우가 구축돼야 합니다.

개인지식관리를 경험하며 회사에서 사용하는 ERP 시스템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전사적 자원 관리(Enterprise Resource Planning)라는 목적을 갖고, 모든 영업, 생산, 물류 활동이 시스템 안에서 관리되고 결과물로 회계 전표가 생성되는, 회사의 역사가 축적되는 시스템입니다. 개인지식관리도 지식의 입력과 생산이라는 측면에서 ERP 시스템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려면 시스템에 남아있는 당시의 기록을 살펴보면 됩니다. 회사에선 ERP 시스템의 기록 외에도 그룹웨어에 남아있는 품의서나 보고서, 주고 받은 이메일, 나의 개인적인 메모 등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할 수 있는 단서가 됩니다.

개인지식관리는 개인의 지적 경험과 성장이 회사처럼 추적 가능하게 남겨두고, 서로 유기적으로 통합되도록 관리하고, 이를 통해서 결과물을 만들고, 이 결과물이 다시 시스템에 쌓이면서 지적 자산을 쌓고 축적해나가게 됩니다. 이렇게 내 지적 사유의 입력과 가공, 출력의 역사가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책이나 논문에서 중요시하는 출처 관리가 필요하게 됩니다. 제텔카스텐의 문헌메모의 역할이 출처를 관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구메모는 각 지식이 어떤 출처에서 왔고, 어떤 지식과 연결되는지 기록하면서 더 큰 아이디어나 통찰로 나아가게 도와줍니다. 이렇게 우리 삶의 특정 부분인 지식과 생각의 발전을 명시화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의 개인지식관리 워크플로우

저의 개인지식관리를 예로 들면, 평소에 하는 생각이나 떠오른 아이디어를 옵시디언 일간 노트에 메모합니다. 그리고 시간 있을 때 이 메모를 다시 찾아서 발전 시키거나(추가 메모), 제텔카스텐의 영구메모가 될 수 있는 메모가 있는지 살펴봅니다. 그렇게 해서 임시메모와 영구메모 흐름이 진행됩니다. 독서는 거의 전자책으로 읽습니다.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하이라이트하고 그에 대한 생각을 메모해 놓습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었을 때, 옵시디언에 문헌메모로 만들어 놓고, 데이터뷰(Dataview) 쿼리 활용을 위해 노트에 대한 프로퍼티(메타데이터)를 충실히 채워 넣습니다. 문헌메모를 만드는 과정은 블로그 아티클을 읽으면서 리드와이즈로 하이라이트하고 메모하고, 논문을 읽으면서 Zotero에서 진행하는 과정이 동일합니다.

그리고 영구메모가 될 수 있는 임시메모, 문헌메모의 하이라이트나 메모를 골라서 영구메모 작성 후 니클라스 루만의 방법처럼 인덱스 메모(영구메모의 링크를 다시 주제별로 모아놓는 메모)의 영구메모 뒤에 배치합니다. 그리고 앞뒤로 일대일 연결만이 아니라 다른 주제에 배치된 영구메모와의 연결도 적극적으로 탐구합니다. 연결을 1개는 기본으로 찾고, 최대한 많이 찾아내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글을 쓸 때 주제와 관련있는 영구메모를 참고하면서 글을 씁니다. 니클라스 루만 교수처럼 논문이나 책의 구조 자체가 영구메모가 쌓이는 구조와 같게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리고 글쓰기를 할 때, 아이디어 상태의 초안은 프로퍼티(Property)의 상태를 'draft'나 'beta'로 두고 데이터뷰로 모아서 볼 수 있게 합니다. 그러면 데이터뷰를 통해 완료되지 않은 초안들을 모아서 볼 수 있고, 시간날 때마다 들어가서 다듬으면서 글을 완성해나갈 수 있습니다. 다양한 시점에서 다시 보고 수정하면 글의 완성도가 올라갑니다. 이렇게 입력과 가공, 연결, 글쓰기의 과정 전체가 옵시디언 안에서 진행됩니다.

이전에 메모양이 현재보다 훨씬 많을 때, 지금같은 워크플로우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메모가 어디로 가야할지 길이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무작정 메모를 많이 하는 일은, 안하는 것보단 훨씬 좋지만, 목적이 없기 때문에 메모의 활용도가 낮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의 시스템에 들어온 메모의 종류별 역할, 가야 할 방향, 목적지가 정해져 있으면 각 흐름에 맞춰서 가공을 하나씩 진행하고, 어디에 써먹을지 생각하면서 시스템에 입력하기 때문에 보다 생산성이 올라갑니다. 그리고 내가 다양한 소스에서 입력한 지식이 연결돼 있는 게 지식을 인출할 때 많은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기존 지식이 스키마로 작용하면서 다른 지식을 받아들일 때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일에 대한 즐거움을 높여줬습니다.


개인지식관리를 하는 이유

여러분은 왜 개인지식관리를 하시거나 관심이 있으신가요? 저는 어릴 때부터 삶의 흔적이 남는 걸 좋아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적은 일기도 잃어버린 노트 몇 권을 제외하면 6년의 기록이 대부분 남아있습니다. 이후에 성인이 되고, 독서하고 다양한 관심사를 배우는 과정에서 느끼는 깨달음과 즐거움의 순간도 남아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했습니다. 개인적인 메모, 독서, 배움을 모두 한 공간에서 볼 수 있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메모하고 기록하는 행위 이후에 만난 게 개인지식관리입니다. 앞으로 저의 일상의 생각과 지적 경험의 순간들, 그리고 모든 결과물이 연결되어 있을 시스템이 현재는 제텔카스텐과 옵시디언입니다. 이전의 저에게 답이 에버노트, 이후엔 워크플로위였던 것처럼 나중에 언제 또 바뀔진 모릅니다. 당시의 나에게 필요하면서 적합한 최선의 답을 찾아나가는 게 삶에서 지속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새롭게 알아가는 재미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귀찮은데 굳이? 나는 안해도 될 것 같은데?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굳이 안 하셔도 됩니다. 내적으로 느껴지는 불편함이나 불만이 없으시다면 개인지식관리라는 도구가 없어도 잘 살아가실 수 있습니다. 시스템 없이도 자신의 모든 지식을 잘 관리하시는 분일 수도 있고, 아직은 개인지식관리가 필요하지 않은 단계일 수도 있습니다. 나중에 인생에서 배운 것들, 아는 것들에 대해서 관리 좀 해봐야겠다는 내적 욕구가 생기시면 다시 저를 찾아주시면 됩니다. 모든 시스템의 고도화엔 추적 가능성이 포함됩니다. 내 생각이 어디서 왔는지 알기 위해서, 나는 어떤 생각을 갖고 사는지 알기 위해선 배움과 생각이 문자화된 관리 시스템이 언젠간 필요하실 수 있습니다.


개인지식관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

제가 생각하는 개인지식관리의 방향은 개인의 성장을 지원하고, 생산성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지식관리가 외부에서 들어오는 지식을 관리하고 연결하고, 이를 통해 결과물을 만드는 것은 지금까지 아티클을 보셨다면 기본적인 방향이라는 걸 아실 겁니다. 삶에서 마주하는 지적 자극의 순간을, 나의 마음을 끄는, 공명하는 대상을 수집하고, 나의 언어로 표현해서 나의 지식으로 남겨놓는 과정입니다. 또한 명시화된(문자화된) 지식을 나의 기존 지식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살펴보고, 새로운 연결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입니다. 이를 통해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생각, 통찰을 만들고 외부에 결과물(글, 책, 논문, 영상 등)로 공유하는 게 개인지식관리 시스템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개인지식관리는 위처럼 외부 지식의 입력과 관리만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을 탐색하는 방향성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결국 우리 삶에 중요한 것들을 수집하는 과정이 개인지식관리의 시작입니다. 이를 통해서 자신만이 느끼는 고유한 욕망을 잡아둘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집된 욕망을 시스템 안에서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보고, 다른 지식과 연결하면서 자신의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을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결국 사회적으로 합의된 욕망이 아닌, 개인의 고유한 욕망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될 겁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사회적 선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따라가는 과정일지, 아니면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나가는 고유한 과정이 될지 스스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통해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달과 6펜스'의 작가인 서머싯 몸의 소설 <면도날>을 읽으면 주인공인 래리가 사회적 합의에 순응하는 삶을 살다가 특별한 경험 이후로 자신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게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이 나옵니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주위 사람들(특히 자신의 약혼녀)과의 갈등, 그리고 래리가 지적, 정신적 삶의 성장을 추구하고 내외면 모두가 변화하는 과정이 소설 전반에 걸쳐서 다뤄집니다. 개인지식관리를 진행하시면 기존에 추구하던 가치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게 되실 겁니다. 이 시스템은 여러분에게 소중한 것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평생 봐야 하는 정신적 지식의 창고인데 거기에 내가 별로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원하지 않는 것들이 보관되어 있다면 여러분은 그 창고를 자주 가서 들여다 보고 싶을까요? 여러분의 답변을 들어보지 않아도 답은 알 것 같습니다.


내면 자원의 명시화 과정

자신의 지적 자원을 수집하는 과정은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오는 지식도 있고, 내면에 잠재된 것들도 있습니다. 살아오면서 아직 언어로 정리되지 않은 자신의 자원은 정리되지 않은 형태로 나의 내부에 머물러 있습니다. 개인지식관리의 과정 중에서 메모하는 행위는 내적 자원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생각, 아이디어, 그리고 잊고 있던 과거의 어떤 경험이나 기억들도 문자로 명시하는 과정을 통해서 무의식의 바다에서 건져낼 수 있습니다. 무의식이란 바다에 그물을 던져서 건져 올리고 언어로 남겨두는 과정입니다.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외부 지식의 내면화 과정과 동시에 내면 지식의 외부화 과정까지 양방향으로 진행되는 게 개인지식관리가 가져야 할 방향성입니다.

기록의 의미와 방법에 대해 다룬 책인 <거인의 노트>를 읽으면 '내적 자산을 활용하라'는 챕터가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을 꺼내는 기록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기록이 내면의 잠재성을 이끌어내는 방식이며 양방향(외부 지식의 내면화, 내부 지식의 명시화) 네트워크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기록을 통해서 액체, 기체 상태로 존재하는 내면의 잠재성을 고체로 명시화 하는 과정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는 제가 개인지식관리에서 추구하는 방향성과 일치합니다.


개인지식관리의 방향성

여러분이 모은 생각은, 어떤 시점의 자극에 의해서, 혹은 내면의 어떤 욕망에 의해서 촉발된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수집된 생각이 쌓이고, 다시 돌아보면서 덧붙여 보고, 변화하는 과정도 보면서 여러분은 점차 삶의 변화를 목도하게 되실 겁니다. 그 변화는 자신만의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신만의 생각을 모으고 나만의 철학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입니다. 계속 개인지식관리 시스템 구축을 진행하시다 보면 우선 자신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구축하는 게 답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왜냐하면 나만의 시스템이고, 나에게 가장 맞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보다 나은 방식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사용 방식을 참고할 순 있습니다.

개인의 고유한 욕망을 발견하는 일, 누가 뭐라해도 내가 좋아하는 일, 가슴 뛰는 일을 찾는 일, 실행하지 않고서는 버티지 못할 가치와 일을 찾는 일, 이게 바로 개인지식관리가 지향해야 할 궁극적인 지점입니다. 여러분이 도달할 지점은 여러분만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야 할 지점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도 말해줄 수 없습니다. 가족도, 직장도, 스승도, 친구도 알려줄 수 없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맡길 수 없는 자신이 해야 할 일입니다. 당신만이 할 수 있는, 당신만이 해야 하는 일로 한 걸음 내딛어 보는 일, 개인지식관리를 통해서 그 단서를 찾고 갈 수 있는, 보이는 지점까지 가보고 나면 다시 방향을 찾아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개인지식관리는 단순히 지식을 쌓고 관리하는 게 목적이 되어선 안 됩니다. 자신의 인생을 디자인해나가는 과정에서, 당시의 나에게 찾아온 나름의 기회와 나름의 해답을 지식의 탐구를 통해서 축적하고, 다양한 시점의 축적된 나와 함께 판단하고 고민하면서 인생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은 개인의 고유한 것이고, 내가 감당하고 감내해야 할 삶의 무게를 외부 시스템(개인지식관리 시스템)과 함께 헤쳐나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자신만의 답을 찾는 일은 개인이 평생 추구해야 하는 일입니다. 답은 개인이 살아있는 기간 안에 찾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결국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을 위해서 매진해나가는 과정을 도와줄 수 있는 개인지식관리를 통해서 우리는 자기의 삶의 방향성을 찾고, 이를 통해 자기실현에 도달하려는 시도를 지속할 수 있을 겁니다. 모든 개인의 성장엔 배우고 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한데 개인지식관리는 이를 가능하게 해줍니다.


마치며

지금까지 2부에 걸친 글을 통해서 개인지식관리의 방법론인 제텔카스텐과 옵시디언, 그리고 개인지식관리라는 일이 지향하는 방향성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지식은 개인의 성장을 가능하게 하고, 자신의 삶에 필요한 방향성을 찾는 과정을 지원합니다. 이는 동시에 철학이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다가오는 것들>이라는 영화를 보면 우리는 삶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 주위 사람들이나 외부 지식(주로 철학)에서 답을 찾고,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문제에 대응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내 선택의 결과를 이후에 펼쳐지는 삶을 통해서 경험합니다. 다음에 다가오는 것에 대해서 다시 같은 과정을 반복합니다. 개인지식관리는 개인의 지적 경험을 누적적으로 쌓으며 살 수 있게 해줍니다. 여러분이 삶을 경험하면서 배우거나 알게 된 내용이 누적되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통합적인 지식의 형태를 다시 돌아보면서 성찰하는 삶을 살 수 있을 때, 우리의 삶은 보다 내가 원하는 방향과 형태를 나타낼거라 생각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지금까지 생산적생산자였습니다.

아무거나질문